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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박물관 구경하기/진주박물관(晋州博物館)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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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의 건립시기는 정유년(丁酉年 1723년)이다.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숙종 45년 12월 22일 경신 1719년 / 鄭道元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判官朴繼壽, 副護軍金洙·申光夏, 水原監牧官鄭治, 南兵使尹五商, 內禁衛將申光夏, 副摠管李鳳祥·東善君炳·張漢相, 副護軍李暉·洪處宙, 司直權尙游·兪命雄·尹憲柱·朴泰恒, 司果韓重熙, 副司果柳憲章·李相成·趙鳴謙·金濟謙·洪龍祚·朴弼正, 副司猛朴昌潤, 副司勇尹 , 副護軍韓信哲·權聖揆·權聖經, 司直兪集一·金演, 副司直李㙫, 司果權重經, 副 司果柳命雄·柳... 윤오상에 대하여는 자세한 기록을 알수가 없다.비석의 전면에는 병사윤공오상무휼유애비( 兵使尹公五商撫恤遺愛碑)라고 적혀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수일(李守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수일[1554~1632]의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隱庵), 시호는 충무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왜군 격퇴에 공을 세우고 1603년 진주성을 증축하는 등 1605년 길주목사로 갈 때까지 진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수일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하며 선정을 베푼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606년(선조 39)에 세운 유애비(遺愛碑)이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개석을 얹었다. 높이는 174㎝, 폭 83㎝, 두께 17㎝이다. 비의 제목은 ‘兵使兼牧使李公守一遺愛碑(병사겸목사이공수일유애비)’이다. 비문은 광해군 때의 학자 하수일(河受一)이 지었다. 1973년 경상남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병사(兵使) 이진경(李眞卿)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 경상우병사 이진경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1702년(숙종 28) 건립하였다.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에 있다. 1973년 진주성 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60㎝, 폭 71㎝,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었다. 이수의 조각이 아주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비석은 풍화로 약간 마모되었지만 비문의 글씨는 알아볼 수 있다. 비의 제목은 “故兵使李公眞卿撫恤軍卒遺愛碑(고병사이공진경무휼군졸유애비)”로, 비문은 없고 이건(移建)에 관한 기록만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甲申 五月 日 曾孫昌肇按節統營移立碑石仍建碑閣 玄孫義豊按節此營敢此移立戊午(갑신 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병마절도사 정기택(鄭騏澤)의 선정을 기리는 비. 병마절도사 정기택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1888년(고종 25)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94㎝, 폭 32㎝, 두께 2㎝의 철제(鐵製) 비신(碑身)과 높이 33㎝, 폭 44㎝, 두께 2㎝의 투구모양 비두(碑頭)가 일체를 이루고 있다. 비문은 풍화로 다소 마모되었으나, 글자는 어느 정도 알아 볼 수 있다. 비의 제목은 ‘兵馬節度使鄭公騏澤永世不忘碑(병마절도사정공기택영세불망비)’로 비명을 지은 사람과 글을 쓴 사람, 철비(鐵碑)를 주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趾美于南 載赫其光 泰喬..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 병사 겸 목사 신경원(申景援)의 선정을 기리는 비. 신경원[1581~1641]의 본관은 평산, 자는 숙헌(叔獻)이다. 1605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패전한 관군을 수습하여 반군을 대파함으로써 진무공신(振武功臣)으로 녹훈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분전하다가 적의 포로가 되어 단식 항거하였다. 신경원은 1630년(인조 8)부터 이듬해까지 진주 병사 겸 목사를 지냈다. 재임 중 청렴한 생활을 하며 선정을 베풀었는데,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1632년에 비를 세웠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에 옮겨져 보호받고 있다.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었다. 높이는 130㎝, ..

진주시장이병문시혜송덕비(晋州市長李炳文施惠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주체는 평거양수계원(平居揚水契員)으로 1964년 10월에 제작하였습니다.진주시장 재직시 평거면에 양수시설등을 설치한 시장 이병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한 송덕비입니다.이병문은 제11대 진주시장으로서 취임은 1961.6.1-1965.3.31까지 3년 10개월간 재직하였습니다. 1961년6월1일 군부세력은 정부체제를 수립하고 진주 시장에 당시 이병문 계엄분실장을 임명 제11대 시장에 현역군인인 이병문 중령이 취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