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문의문화재단지
- 문경새재
- 보성오씨
- 오블완
- 효자문
- 청풍문화재단지
- 화양구곡
- 법주사
- 부도
- 단지주혈
- 각연사
- 티스토리챌린지
- 경주김씨
- 상당산성
- 공주박물관
- 충주박물관
- 선돌
- 사인암
- 공산성 선정비
- 밀양박씨
- 청주박물관
- 곡산연씨
- 사과과수원
- 국립청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부여박물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한독의약박물관
- 효자각
- 충북의 문화재
- Today
- Total
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0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서 전개된 항일 학생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충주시가 세운 유적비이다. 1985년 9월 대소원초등학교 교정에 처음 세워졌으며, 2003년 9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이후 2008년 12월 13일 충주보훈지청의 지원을 받아 대소원초등학교 정문 앞에 높이 3.1m, 너비 2.1m인 유적비가 중건되었다.광주항일학생운동은 1929년 11일 당시 전라남도 광주면에서 시작되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 확산되었으며, 충주에서도 1930년 2월 당시 이류면(지금의 대소원면) 대소리에 있던 대소원보통학교 5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대소원보통학교 재학생 이상열(李相烈)·성낙일(成樂一)·조태국(趙泰國)·황후길(黃後吉) 등은 대소원 장날인 2월 7일을 기하여 시위를 거행하기로 계..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무위원이던 강재룡의 공덕을 기리는 비입니다. 강재룡의 자선불망비로, 옛 비석 앞에 새롭게 비를 건립하여 같은 내용의 비석 두 개가 함께 있다. 구비에는 건립자의 명단이 없으나, 신비에는 설립자 우광정(禹光政)·김원식(金元植)의 이름이 음기되어 있다. 국도 3호선 옆 대소원초등학교 입구에서 오른쪽의 소나무공원을 벗어나자마자 잡초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구비는 비좌규수의 형태이며, 신비는 비좌개석의 형태이다. 구비의 크기는 34×11×82㎝이며, 받침돌 없이 시멘트로 단처럼 만들었다. 비석의 끝 자인 ‘비(碑)’가 간신히 드러나 있는 점으로 미루어 후대에 시멘트로 복원한 듯하다. 신비는 지붕돌 82×50×47㎝, 비신 52×23×139㎝로, 비신은 오석이며..

김구환은 본관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빈농가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성장하면서 계막사립소학교를 졸업할 무렵 김구환의 형 金龍煥은 수년간 신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1943년경 피접避接을 구실로 신니 면 견학리로 전가족이 이사를 하였다. 그후 단신으로 상경하여 고학으로 한양대학교 를 졸업하고 육이오 동란 후 약사로 자수성가하여 한독약품 상무이사로 재임할 때 고향 마을에 많은 금액을 희사하신 독지가 김구환씨는 애석하게도 1989년 향년 61세(당시 한독약품 부사장)로 별세하였다. 고향마을에 희사한 내역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1968년 소류지(小溜池) 사업당시 백미 오십두 대금 희사 1976년 전화사업 당시 현금 오십만원 희사 1979년 양곡 보관창고 건립시 현금 일백만원 희사고향마을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

주덕읍사무소 야외에 있는 덕면면장을 지낸 이의명의 불망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덕면면장이희명영사불망비( 德面面長李羲命永思不忘碑)라고 적혀있습니다. 리희명(李羲命 : 1854~1914) : 1898년부터 1910년까지 덕면 면장을 하고, 일제시대인 1911년부터 1914년까지다시 덕면 면장을 한 분이다. 그의 선정을 기리는 이희명 불망비가 주덕읍 사무소 앞에 있다. 비석은 높이 128㎝, 폭 35㎝, 두께 17㎝로, 대정 3년(1914) 4월에 세워졌다. 전면에는 덕면면장 이희명 영사불망비, 양측에는 ‘혜인이덕 몰유유애 시사유공 유신기공(惠人以德 沒有遺愛 施事維公愈新其功)이라고 쓰여 있다. 이 비석은 원래 제내리 성동 입구인 599번 지방도에 세워져 있었으나 1999년 6월23일 현재 위치로 옮겼다.

비문에는 ‘면장유학리용로혜급일면불-- (面長幼學李容魯惠及一面不--)라 되어 있는데 비석의 하단이 절단된 것을 이어 붙인 것이다. 비석의 하단 글씨는 불망비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불자만 보일뿐 밑의 글자는 확인할 수 없다. 비신의 좌측에 간지가 적혀있는데 정해오월 일(丁亥五月 日)이라 되어 있다. 리용로의 본관은 전주이다. 고종 대한제국 7년에 출생 계유 1903년 타계하였다. 묘지는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 신평에 있다. 면장 송덕비가 주덕읍사무소 정문 옆 정원에 있다.비석의 건립연도가 정해년이 맞다면 서기 1887년이다.

주덕읍 신양리 읍사무소앞에 있으며 건립시기는 1957년이다. 비문에는 ‘유학김해김현문효행비(幼學金海金縣文 孝行碑)’라 하고 좌우에 ‘노모중풍 신음오년 매부출외 시물여전 거상성묘 일일불천 동유포상 면시상전 (老母中風 呻吟五年 每負出外 視物如前 居喪省墓 一日不遷 洞有褒賞 面施賞錢)’이라 기록되었다. 이 비문으로 보아 노모가 중풍이 들어 신음하여도 매일 업어 출입하여 불편함이 없이 하였고 상을 당해 묘를 가꿈도 하루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지극정성이기에 동에서도 포상을 하고 면에서도 상장과 상금을 주었다고 한다. 효행비는 1957년 세운 것으로 원래 삼청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주덕읍사무소 앞으로 이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