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청안팔경(淸安八景)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5. 6. 15. 21:10

청안팔경(淸安八景)

진의귀(陳義貴) 〔 ? -1424〕
 
용문동에서 보내는 손님        龍門送客
들판은 넓고 푸른 산은 그림같은데        野濶山如畵
냇물은 잔잔하고 풀은 돗자리 같네        川平草砂茵
쪽박 술잔 찬합의 안주로 손님을 보내니        匏樽木榼送佳賓
그대는 이별주 너무 사양치 마시오        別酒莫辭頻
 
양관의 곡조가 비록 슬프다 하여도        悽斷腸關曲
가는 길이 티끌 세상에 잠겨 버리네        蹉沱未路塵
떠나는데 옷깃을 잡고 다시 머뭇거리니        臨分執袂更浚巡
흐르는 눈물을 진정 감출 수 없구나        不禁涕酸辛
 
구석사 찾아오는 중        龜石尋僧
옛 절은 산에 묻혀 그냥 적막한데        古寺依岑寂
층마루는 푸른 산을 마주하고 있네        層軒對翠微
숲 지른 돌길이 연기 속에 숨어 있는데        穿林石路入煙霏
낮에도 고요해 이끼 낀 문 닫혔네        晝靜掩苔扉
 
벽 향해 앉아 중이 입정한 줄 알고        面壁知僧定
둥지 찾던 학도 돌아가 버리는구나        尋巢見鶴歸
돌탑에 해 기울어 앉아서 기심을 잊으니        日斜禪榻坐忘機
푸른 산빛이 옷을 물들이려 하네        風翠欲沾衣
 
다래골에서 기르는 말        薍谷牧馬
끊어진 벼랑에 부들 잎은 푸르르고        斷崖蒼蒲綠
층층 산마루에 철쭉꽃 붉게 피었네        層巒躑躅紅
좋은 날에 시냇가 동쪽에서 말을 먹이니        良辰秣馬碧溪東
비 그치자 풀빛이 하늘까지 닿았네        雨過草連空
 
세상 밖에 노는 것도 자랑스러운데        物外玆遊勝
술잔 앞에 특별한 음식이 가득하네        樽前異味重
술에 취하여 휘파람 부니 흥은 그지없고        酒酣長嘯如無窮
기울어진 모자에 꽃 바람만 날리네        欹帽落花風
 
반계에서 고기잡이        磻溪捕魚
물이 드넓은데 물고기 거품을 내고        水闊魚吹浪
바람이 가벼워 제비들이 물결 차네        風輕燕掠波
흐름을 막고 잡은 고기 수레에 가득하니        橫流擧網忽盈車
큰 놈을 잡았다고 저마다 자랑이네        得雋客矜誇
 
회를 안주삼아 술잔을 자꾸 들어도        斮獪傾柸數
끓이는 생선은 가마솥에 가득하구나        烹鮮漑釜多
개울가 모래 위에 앉아 종일 술 마시니        波頭盡日飮無何
모자도 제멋대로 비스듬히 얹혔구나        也任帽欹斜
 
유성산에 내리는 비        杻城白雨
여러 산들이 넓은 평야에 둘러있고        列岫圍乎野
외로운 성이 산 머리에 걸쳐 있구나        孤城倚翠巓
바람이 빗발을 날려 연기처럼 흩어지니        風吹雨脚散如煙
산 기운만이 더불어 아득하여라        山氣共悠然
 
무지개가 끝이나는 곳이 그 어딘가        虹斷知何處
갈가마귀 깃들고 하루해가 저무네        鴉棲欲暮天
한가한 사람 대발 걷어놓고 난간에 기대니        幽人捲箔倚欄邊
가을 냇물이 앞 내에 가득할 뿐이네        秋水滿前川
 
초령에 뜬 흰구름        椒嶺晴雲
구비구비 산들이 은하수에 닿은 듯        疊嶂凌淸漢
한가한 구름이 푸른 봉우리에 걸쳤네        閒雲惹碧岑
구름이 솜 같이 눈 같이 숲을 덮었으니        如緜如雪鑞千林
골짝이 다시금 그윽하고도 깊었구나        洞壑更幽深
 
학이 날아가니 부질없이 옛일 생각나고        鶴去空懷古
원숭이 울음소리에 감회마저 새롭구나        猿啼似感今
지팡이 짚고 글 읊을 생각 금할 수 없는데 吟看倚杖思難禁
돌아다 보니 저만치 해는 지려고 하네        回首日將沉
 
청하에서 계음놀이        淸河禊飮
어둑한 버들은 봄빛을 간직하였고        柳暗藏春色
성긴 소나무가 빗소리를 머금었네        松疏帶雨聲
산이 깊어 대낮에도 두견이 울고 있는데        山深白日子規鳴
아름다운 절기는 청명이 분명하구나        佳節是淸明
 
냇물에 띄운 술잔은 빠르게 흘러가고        水送流觴急
바람이 불어 펄럭이는 소매 가볍구나        風吹舞袖輕
꽃가지 가득 꽂아서 모자마저 기울어지니        花枝蒲揷接䍦傾
취한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노니네        扶醉盡中行
 
향교에서 글 읽는 소리        黌舍閑吟
산 고을이 나그네를 이끌어        山郡携佳客
향교로 찾아들어 소왕을 배알했네        黌廬謁素王
광간하여 비연히 문장을 이루었다 하니        斐然狂簡摠成章
서로 읍례를 나누고 강당에 오르네        相楫共升堂
 
뒤에 있는 고개에는 소나무가 푸르고        後嶺松杉翠
앞에 있는 연못에는 연꽃이 향기롭네        前池幽耆香
글을 논하며 앉았으니 하루해는 더욱 길고        論文對榻日偏長
맑은 흥취 호연하여 헤아릴 길 없네        淸興浩難量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