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안면 화성리 곡산연문쌍효각(道安面 花城里 谷山延門雙孝閣)
효자로 원근에 소문이 난 연주운(延周運)과 연면회(延冕會)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화성3리 상작마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번의 중수를 거치면서 벽돌담과 단청 그리고 표지석등이 정비되어 참 보기가 좋습니다.야트막한 담 위로는 마을주민들이 꽃화분 등을 놓았습니다. 세대의 반영인지 스테인레스 출입문도 만들어 놓았습니다.상작마을 마을회관 얖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의 지명은 정문이 있다 하여 정문거리라고 불리웁니다.
새롭게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마 지자체에서 세워 놓은 듯 합니다. 마을마다 특색있게 마을별로 환경정비사업등을 한 결과 인 듯 싶습니다. 곡산연문쌍효각(谷山延門雙孝閣)이라 써있고 작은 글씨로 효자성균관생원진사곡산연문이십이세주운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곡산연공면회( 孝子成均館生員進士谷山延門二十二世周運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谷山延公冕會)라고 적혀 있습니다.
효자 연주운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24년(1887)에 나라에서 정려를 세웠습니다. 뒤에 연주운의 손자인 연면회의 정려를 같이 세워 효행을 기리고 있습니다.연주운은 본관은 곡산이며 호는 퇴수정( 退修亭 ) 자는 성구(聖久)입니다.
연주운은 어려서 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생존하였을 때는 위독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다리살을 베어 먹여 목숨을 연명시키는 할고공양(割股供養)은 물론이거니와 돌아 가신후에도 애통해 하는 모습은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고을 밖 이성산에 안장한 후 묘옆에 움막을 짓고 삼년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연주운은 시묘막(侍墓幕)에서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통곡을 하였는데 그 통곡소리가 어찌나 애절 하였던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연주운은 매일 10리정도의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 약수를 떠다가 제사상에 올리고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아무리 날씨가 궂은날도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이 물을 떠다가 정성껏 올렸다.
또한 아버지의 제삿날이면 몸과 마음을 깨끗히 하고 부정을 멀리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기와 생선은 전혀 먹질 않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살아 생전 대하듯 하니 원근의 많은 사람들의 효행의 본보기가 되었다.이러한 효행을 잊지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곡산연씨 문중에서 도안면 화성3리 상작마을에 효자문을 세웠다.
효자각 안에는 위에 효자성균생원연주운지려상지십삼년정해사월일명정( 孝子成均生員延周運之閭上之十三年丁亥四月日命旌 )(1887년)과 그 아래 편액에는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연면회지려상지십팔년임진오월일명정(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延冕會之閭上之十八年壬辰五月日命旌)(1892년)라는 편액이 나란히 걸려있다.
그리고 세재갑오삼월상한( 歲在甲午三月上澣 )판돈녕부사 시강원 좌빈객 민영상(閔泳商)이 1894년(甲午年)에 쓴 곡산연씨효자정려기( 谷山延氏孝子旌閭記)가 걸려있다.
연면회는 자는 단경(斷經), 호는 설초당(雪蕉堂), 본관은 곡산, 연사종의 후손으로 천성이 지효하고 학문도 성취했다. 어머니가 안질(眼疾)로 실명하기에 이르니 주야로 곁을 떠나지 않고 음식과 대소변을 일일이 손수 보살펴 5년 동안을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날 일을 나가기 전 "애야 내가 주책인지 녹담초가 먹고 싶구나 " 하는 어머니 말씀에 몇 날 며칠을 녹담초를 찾아 인근에 험한 산들을 헤매였지만 구할수가 없었다. 심히 애통해 하다가 깜박 나무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강원도 영월 서쪽 강변으로 가보라는 말에 깨어나 하늘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영월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녹담초가 있었다.
연면회는 먼길을 오느라 발이 부르트고 몸이 힘들었지만 녹담초를 구해 어머니께 드릴수 있다는 효성의 마음에서 인지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녹담초를 가져와 어머니께 정성들여 달여드리니 어머니의 보이지 않던 눈이 보였다고 한다. 이 또한 연면회의 효성이 하늘을 감동 시킨것이라고 원근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연면회의 효해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가 병이 들어 고생하실 때는 엄동설한(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와서 드시게 하였다고 한다.이러한 연면회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연주운과 합설하여 정려를 세웠다.
지금의 건물은 정면 한칸 측면 한칸 팔작지붕에 목조기와집이며 주위는 잘 정비하여 깨끗히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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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담초( 鹿膽草 )는 천심련( 穿心蓮 )이라고 불리우는 약재로 쓴맛이 강한 잎과 줄기가 특징이며 약초로서 면역력을 높이고 체내 염증을 낮추며 몸속에 독소제거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약초로서 전통의학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