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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면 삼방리마애여래좌상(佛頂面 三訪里磨崖如來坐像)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불정면 삼방리마애여래좌상(佛頂面 三訪里磨崖如來坐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1. 20. 13:31

 

온 천지가 눈이다. 고향으로 가는길에 삼방리로 길을 돌렸다.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탑촌 삼층석탑과 관전마을 마애불을 둘러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마애불로 들어서는 마을인 갓돈(관전마을)이 눈속에 파묻혀있다. 다행인것은 그래도 도로는 눈이 녹았으니 다행이다.

 

 

마애불로 들어서는 오르막길이 조용하다.

 

불정면 삼방리 갓돈마을에 있는 삼방리마애여래좌상입니다. 마을주민들에게는 태양바위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삼방리라는 마을지명과도 연관이 있는 마애불입니다.

전체 높이 348.5㎝, 불상 높이 320㎝.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어래산(御來山) 중턱에 위치한 자연 암반의 전면을 다듬어 대형의 여래좌상을 새겼다. 큼직한 사다리꼴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보아 온화한 인상에 원만한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를 갖추고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뚜렷하다.

 

불상은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연화좌(蓮華座) 위에 단정하게 앉아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균형 잡힌 건장한 체구가 안정되어 있으며 벌어진 어깨와 넓은 가슴, 육중한 무릎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몸집에서 당당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다. 양어깨를 감싼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자락이 손목을 감아 무릎을 덮어 흘러내리고 있다.

복부 아래로는 대여섯 줄의 느슨한 곡선으로 군의(裙衣)의 옷주름 선을 간략하게 나타내었다. 그 조각 기법이 다소 거칠고도 둔중하다. 수인(手印)은 상당 부분 마멸되어 쉽게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가슴 앞으로 들어올려 중지와 약지를 엄지손가락에 둥글게 맞댄 오른손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연상시킨다. 왼손은 손바닥을 가지런히 위로 하여 무릎 앞에 살짝 올려놓고 있는데, 군의 자락 속으로 내보인 양발과 더불어 다소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다.

 

 

눈은 길게 옆으로 반쯤 떴는데 반원의 곡선을 이루는 양 눈썹이 그린 듯 선명하다. 콧마루가 넓적한 코는 비교적 자연스러우며 직선에 가까운 작은 입은 눌러 꼭 다물고 있다.

도톰한 귓밥이 묵직하게 늘어진 양 귀가 어깨에 닿을 듯하며 약간 비대해 보이는 목에는 삼도(三道)가 분명하다. 뺨과 턱에 살이 많이 붙은 얼굴은 상당히 비만한 편이나 얕은 선각에 의한 세부 묘사에서 회화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부처의 얼굴을 보여 준다.

 

 

불상의 앞쪽으로는 자연석으로 불단(佛壇)을 쌓아 올렸다. 명문(銘文)이나 기타 가구(架構), 목조 전실(前室) 등 부수적인 구조물이 설치되었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살펴보아 불상은 아래턱에서 왼쪽 팔목에 이르는 균열과 부분적인 마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다.

 

 

원만한 얼굴 모습과 장대한 체구, 옷의 형식 등에서 고려시대의 마애여래상으로 추정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초에 한 고승 대덕(高僧大德)이 이곳에 은거한 공신(功臣) 배극렴(裵克簾)을 세 번에 걸쳐 친히 찾은 바 있는 태조의 성덕(聖德)을 기리는 뜻에서 이 마애불상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바위면이 습기를 먹어 촉촉히 젖은 덕분에 불상의 양감이 살아서 수인과 옷매듭등이 선명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