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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박곤원(朴坤元, 1477∼1607) 상서공 박선(尙書公 朴善)의 16세손으로(문원공파) 호(號)는 옥계(玉溪). 성리학(性理學)의 연구에 전념한 학자로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의 옥화서원(玉華書院)에 배향 (配享)되었다. 비석에는 옥계박곤원선생유적비(玉溪朴坤元先生遺蹟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박곤원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76년 10월3일에 건립하였습니다.옥계선생 사후인 만력임자년(1612년) 가을에 쓴 비문을 차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도율리는 도촌(道村)과 율티(栗峙)가 합하여진 마을로서 옛기록에 이 마을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일제조정때 도가실과 밤티를 합하여 도율리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도촌에 55호 138명, 율티에 37호 67명이 살고 있다. 도율리라 이름 짓게 된 것은 두 마을을 합치면서 도촌마을의 도(道)자와 율티의 율(栗)자를 한자씩 취하여 도율리라 칭하게 되었다. 도촌은 원래 “도가실”을 한자화할 때 발음대로 “도”를 길도(道)로, “실”을 마을촌(村)으로 사용하여 도촌(道村)으로 부르고 있으나 사실은 옥천~보은의 옛길은 이곳을 지나 월외~장선~동정~회인(보은)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상인들이 쉬어가거나 물건을 받아가는 도가(都家)가 있어 이 마을을 도가실이..
도율리는 도촌(道村)과 율티(栗峙)가 합하여진 마을로서 옛기록에 이 마을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일제조정때 도가실과 밤티를 합하여 도율리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율리라 이름 짓게 된 것은 두 마을을 합치면서 도촌마을의 도(道)자와 율티의 율(栗)자를 한자씩 취하여 도율리라 칭하게 되었다. 도촌은 원래 “도가실”을 한자화할 때 발음대로 “도”를 길도(道)로, “실”을 마을촌(村)으로 사용하여 도촌(道村)으로 부르고 있으나 사실은 옥천~보은의 옛길은 이곳을 지나 월외~장선~동정~회인(보은)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상인들이 쉬어가거나 물건을 받아가는 도가(都家)가 있어 이 마을을 도가실이라 하였다. 율티는 옛말로 “밤티”를 한자화하여 밤율(栗) 고개티(峙)를 써서 ..
청성면 구음리 마을입구 비석거리앞에 있는 갑오생기념식수기념비입니다. 이 동네 출신인 갑오생사람들이 모여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우정을 변치않고 화합을 다지는 의미에서 기념식수를 하고 작은 빗돌을 세웠다. 2014년 5월11일 1954년생인 갑오생들이 모여서 기념식수를 한곳이다. 보청천가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서 기념식수를 하였다.
1989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연산군대(1494~1506)에 사헌부 집의 민돈암(晩遯庵) 윤사석이 세운 파평윤씨 정자로 1926년 허물어져 1989년에 재건하였다. 지금의 정자는 1989년에 재건한 건물로 정면2칸 측면1칸 겹처마 팔작지붕에 양회바닥이며 안에는 1989년에 윤지한이 지은 "만경정중수기"를 걸었으며 밖에는 "만경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그리고 정자앞에 1989년에 윤지한이 지은 "만경정중건기비"를 세웠다. 지붕에서 누수가 있는지 천막을 덮어 놓았다. 보수가 필요하다. 윤사석은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둔암(遯菴)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玉花里)에 은거하였다. 성종 때 사헌부집의를 지냈으나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함께 미원으로 내..
조헌선생의 유상지석이 위치한 곳은 망기대(望氣臺)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옛 용촌초등학교 북편에 중봉 조헌이 하늘의 천기를 보던 유상지석(遊賞之石)을 말하며 이칭(異稱)으로는 관천석(觀天石) 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안내면 용촌리는 산촌마을로 의병장 조헌 이 임진왜란 때 후율정사를 짓고 호국의 의지를 닦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안내면에서 북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월외리, 남쪽은 도율리와 답양리, 서쪽은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북쪽은 보은군 회남면 노성리와 인접한다. 가산천이 북쪽에서 새터말, 용수말, 솔맥이를 거쳐 서쪽 답양리로 흐른다. 용촌리는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의하면 가산리佳山里에 속하였던 마을 이다. 1830년대 『옥천읍지』에서는 옥천 관문에서 35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 하였고, 189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