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정공종현청간선정비(營將鄭公宗鉉淸簡善政碑)라고 써 있습니다. 우암산 순회도로 비석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鄭宗鉉)의 치적을 기리는 선정비.

조선 고종대에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64년(고종 1)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쪽으로 가는길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여섯 번째에 있다. 높이 97㎝, 폭 43㎝, 두께 19㎝의 비갈(碑碣)모양의 비신(碑身)으로 세웠으며, 받침돌과 비신이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비의 제목은 ‘營將鄭公宗鉉淸簡善政碑(영장정공종현청간선정비)’이다. 뒷면에 ‘동치(同治) 삼년(三年) 유월(六月) 일(日)’이라고 건립시기를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온화하고 조용 담백하며, 청렴강직하며 공평하네. 백성들은 그가 떠나가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길을 막는 인파가 성을 가득 메웠다.” 라는 것이다.

 [營將鄭宗鉉善政碑]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승정원일기 2678책 (탈초본 127책) 고종 1년 6월 18일 정해 8/15 기사 1864년  同治(淸/穆宗) 3년

....鄭宗鉉前任西原營將, 忠翊衛將金尙奎前任平安監營中軍, 忠翊衛將金永喆前任慶尙監營中軍, 俱在任所, 上來間該廳番次苟艱云, 竝改差, 何如? 傳曰, 允。

 

 

 

 

 

우암동 비선거리에 있는 절도사 구완식의 불망비입니다. 절도사구공완식거사불망비(節度使具公完植去思不忘碑)라고 적혀있습니다. 구완식은 근대 개항기의 무관입니다.1881년 11월 28일부터 1882년 8월 1일까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근대 개항기 고종(高宗) 때의 무관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인여(藺汝), 호는 미산(渼山)으로 능성구씨 도원수파(都元帥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구병일(具秉一),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생모는 함종어씨(咸從魚氏)이며,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일찍이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과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서 성리학을 배웠으며, 27세 때인 1851년(철종 2) 알성무과(謁聖武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69년(고종 6) 훈련도감의 초관으로 장관들의 사회(射會)때 유엽전을 잇달아 다섯 번을 모두 맞추었던 사실로 보아 활을 아주 잘 쏘았던 것으로 보인다.

1870년 후창군수(厚昌郡守)로 제수되었다가 어머니의 나이가 74세인 관계로 인천도호부사(仁川都護府使)로 제수되었다. 인천도호부사로 재직 중에는 바다 어귀의 일곱 포구에 각각 포수를 100명씩 배치하여 군사훈련을 철저히 하면서도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정성을 다하였기에 체직(遞職, 벼슬을 갈아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기가 연장되었다.

특히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당시 인천연안에 방어진을 두고 포대를 설치하여 외국함선의 침입에 대비한 공로로 왕으로부터 녹피(鹿皮)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1876년에 황해수사(黃海水使), 1878년에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1881년에 무위영의 좌사파총(左司把摠)과 어영청 중군부총관에 제수되었고, 같은 해 11월 28일 충청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다. 12월 구완식이 하직을 청하자 고종(高宗)은 장궁 1장, 장전 1부, 편전 1부, 통아 1개를 하사하여 하직을 만류하였다.

그가 병마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흉년이 들어 도적떼들이 약탈을 일삼고 험준한 속리산 속에 웅거하고 있어서 쉽게 소탕할 수가 없었는데, 구완식이 성지(城池)를 수축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며 도적을 토벌할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방(榜)을 붙여 그들을 효유(曉諭)하자 도적떼가 모두 두려워하여 굴복하였다. 이에 도민(道民)들이 모두 안심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냇물을 막아 보(洑)를 만들어 청주의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데 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한 공로도 있어 1893년에 청주의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인하여 충주(忠州)로 피신하였던 명성황후(明成皇后)가 환어(還御)할 때는 호위장(護衛將)으로서 봉영(奉迎)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1882년 8월 1일 충청도 병마절도사에서 총융사로 임명되었고, 곧 금위대장(禁衛大將)에 임명되어 무과회시(武科會試)의 시관(試官)으로 활동하였다.

1883년에는 병조참판에 임명되고,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가 되었으며 다시 금위대장에 임명되었다. 1884년에는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 1888년 무과전시(武科殿試)의 고관(考官)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893년에 청주의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1910년에 무숙공(武肅公)으로 시호되었다.

 [具完植]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승정원일기 2894책 (탈초본 133책) 고종 18년 11월 28일 병진 6/13 기사 1881년  光緖(淸/德宗) 7년

兵曹, 口傳政事, 以具完植爲忠淸兵使

 

 

 

조선시대 충청도 사또들, 매를 집단으로 맞다 - 충북과 나의 연결고리 '충북일보' (inews365.com)

 

조선시대 충청도 사또들, 매를 집단으로 맞다

[충북일보] 농업은 전근대 사회를 통틀어 국가재정의 밑바탕을 차지했고,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리 시설의 개설과 유지·보수는 국정의 우선순위를 차치하였다. 수리시설 가운데 제언(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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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앞으로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눈 뜨나 눈 감으나

아이들의 웃음소리 항상 듣고 있으니

순치명 석불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닮아가나 봅니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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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우암산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들입니다.비석이 있어 비선거리라고 불립니다.

 

 

 

청주 우암산 비선거리에 있는 청주군수를 지낸 김명수의 영세 불망비 입니다. 선정비의 상단이 부러져 분실이 되였지만 여러문헌을 참고하여 추론을 해 본 결과 승정원일기 고종36년(1899) 6월 25일자를 참고하여 보면 청주군수 김명수의 영세불망비임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청주군수 김명수의 후임으로 군수 이한응이 청주군수로 오게 됨을 알수 있습니다.

 

고종 36년 6월 25일  신축 1899년

任廣州府尹鄭寅奭, 任江華府尹韓麟鎬, 任洪州郡守李錫珪, 淸州郡守金命洙, 任江陵郡守兪起濬, 任鎭川郡守趙漢肅, 任會寧郡守申泰熙, 任安州郡守李蓍宰, 任甕津郡守朴熙鎭, 任咸昌郡守趙炳淳, 任茂山郡守金秉周, 任唐津郡守任喆宰, 任梁山郡守金商弼, 任樂安郡守文昌錫, 任稷山郡守李秉奎, 任珍島郡守李範喬, 任槐山郡守李昌翼, 任德山郡守李載紀, 任舒川郡守金建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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