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단지주혈
- 사인암
- 국립청주박물관
- 곡산연씨
- 문의문화재단지
- 화양구곡
- 외사리 당간지주
- 충북의 문화재
- 경주김씨
- 공주박물관
- 각연사
- 문경새재
- 현충시설
- 보성오씨
- 밀양박씨
- 공산성 선정비
- 화양동 암각자
- 부도
- 법주사
- 효자각
- 청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효자문
- 선돌
- 상당산성
- 사과과수원
- 충주박물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청풍문화재단지 비석
- 부여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2023/04 (3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괴산읍 검승리에 자리하고 있는 애한정 앞에 자리하고 있는 동몽선습비입니다. 박세무(1487 ~ 1554)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 저서로는 《동몽선습》이 있습니다. 사관 때 김안로의 미움을 사게 되어 마전군수로 좌천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었다. 승문원참교, 안변부사·군자감정 등을 역임했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글씨를 잘 썼다 박세무(朴世茂)는 본관 함양. 자 경번(景蕃). 호 소요당(消遙堂). 1516년(중종 1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갔다. 헌납(獻納)을 거쳐, 사관(史官)이 되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사게 되어 1539년 마전군수(麻田郡守)로 좌천되었으며, 선정을 베풀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1544년 승문원참교(參校)를 지내고, ..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애한정입니다. 애한정 주위로는 동몽선습비와 효자비와 농사역사박물관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괴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1978년에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애한정은 임진왜란 때 백의(白衣)로 왕을 의주까지 호가(扈駕)하여 그 공으로 별좌(別座)에 올랐다가 광해군 때 낙향한 박지겸(朴知謙)이 광해군 6년(1614)에 지은 학재(學齋)이다. 이 후 현종(顯宗) 15년(1674)에 그의 손자인 박정준(朴廷俊)이 군수 황세구(黃世耉)의 도움을 받아 새로 짓고, 숙종 38년(1712), 숙종 44년(1718), 영조 51년(1775), 그리고 1979년에 중수하였다. 초기의 건물은 아래쪽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작은 건물이었던 듯한데, 후대에 중수하면서 위쪽에 ..
몇 번이고 찾은곳이지만 참 좋은곳이다. 산속 깊이 자리잡은 이 곳 수락골도 집이 자꾸만 생기는것 같다. 골짜기로 향하는 좌 우로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수락골을 흐르는 불사천가로도 인공의 조형물이 쌓이고 자꾸만 자연의 흐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느티나무밑에 의자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지고 그 위로 바람소리 산새소리가 켜켜히 쌓이고 있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1287년(충렬왕 13)에 출생하여 1367년(공민왕 16)까지 활동한 인물로 당시 고려사회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고려 최고의 관직까지 올랐으며, 그가 남긴 수많은 글과 더불어 해박한 식견은 현재는 물론이고, 당시 사회에서 이미 존경받고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100여 년간..
문의면 상장리에 있는 돌탑입니다. 갈현리 못미쳐 도로에 있습니다. 아직도 마을주민들의 관심을 먹고 있는지 금줄을 두르고 있습니다. 상장리는 면의 동부에 위치하며 동은 노현리와 괴곡리, 서는 미천리, 남은 구룡리, 북은 미천리와 접해 있다. 상장리는 마을 북쪽 봉화봉 남사면 골짜기에 발달한 마을로 수몰 전에는 고저평야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물에 잠겼다. 마을의 주된 마을은 원상장 마을이며 마을 옆에는 노루실 마을이 있었으나 모두 수몰되었다. 노루실 남쪽 골짜기에 기산마을이 있고, 기산 남쪽은 좌골(조화동)마을, 동쪽은 피미 마을이 있다. 노루실 북쪽 내건너 산기슭에 삼리마을이 있었으나 수몰되었고, 삼리 동쪽에는 의성골 마을이 있다. 또한 가덕 삼항가는 경계지역에는 소목골 마을이 수몰이..
산외면 산대리에 있는 산외면 오대리로의 하동정씨 입향조인 정동량을 모신 제각입니다. 밖에는 하동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제각에는 정동량의 자인 서한을 본뜬 서한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정동량은 하동인으로 고려시대때 지례부사를 지낸 정손립의 18대손입니다.1717년(숙종43)에 옥천군 안남면 창정리에서 사촌동생인 정동규와 함께 오대리로 이주 하였습니다.하동정씨 산외면 입향조가 된셈입니다. 기적비문에 의하면 하동정씨로 휘는 동량이요 자는 서한이며 직위는 통정대부이시니 보은에 낙향하신지도 삼백여성상을 넘으셨으며 이하 자손도 수백에 이르니 그 뜻을 받들어 숭조돈종의 정신을 굳게 새기고 조상님의 영혼을 고이 봉안하기위해 문중총의에 의거 제각을 건립하게 되었음을 이 민석에 새겨 전하노라. 서기 2007년
산대리는 본래 보은군 산외면의 지역으로서, 산 속의 터가 되므로 산대(山大)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포, 재동, 모정을 병합하여 산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 로는 모링개 : 원산대 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노루를 잡으려고 모랐다고 해서 붙인 말 모정(茅亭) : 산대리 동쪽에 있는 마을. 약 2백여년전, 구씨의 선조 모정공이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함. 바깥모정 : 모정의 바깥쪽에 있는 마을 이름 신개울(新浦) : 산대 서쪽에 있는 마을 재경골(재궁골,才洞) : 신개울 동쪽에 있는 마을. 약 2백년전 문화 류씨의 재궁이 있었음 원-산대 : 신개울 남쪽에 있는 마을 유상길(柳相吉), 상태(相泰), 상좌(相佐) 3형제의 효행이 전해진다하여 삼효촌으로 불립니다. 본관은 문화 유씨(文化 柳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