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법주사
- 사인암
- 화양구곡
- 현충시설
- 충주박물관
- 부도
- 곡산연씨
- 청주박물관
- 효자문
- 외사리 당간지주
- 보성오씨
- 국립청주박물관
- 부여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상당산성
- 공산성 선정비
- 문경새재
- 경주김씨
- 각연사
- 선돌
- 밀양박씨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충북의 문화재
- 화양동 암각자
- 단지주혈
- 공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비석
- 문의문화재단지
- 효자각
- 사과과수원
- Today
- Total
목록전국방방곡곡/남원(南原) (5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남원 실상사에 있는 전북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 남원실상사 건칠아미타불좌상과 건칠보살입상입니다. 건칠불이란 나무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내버린 불상을 말합니다. 극락전에 있는 건칠아미타불상과 보광전에 있는 건칠보살입상을 합하여 전북유형문화재 제 25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습니다.혼동하기 쉽습니다.
양재영 남원면장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광한루원을 보수하였다. 면장양공재영시혜비(面長梁公裁英施惠碑)라고 적혀있다.
광한루에 위치하고 있는 춘향영당입니다. 최초의 춘향 영정은 춘향사당이 건립되던 1931년경에 제작된 강주수 화백의 작품이다. 그뒤 1939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첫 번째 그린 작품을 현준호가 기증하여 봉안하였으나 한국전쟁 중에 춘향 영정이 훼손되자, 1961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다시 그린 것을 당시 내각수반이던 송요찬 장군이 기증하여 현재까지 봉안하고 있다. 진본은 남원시 향토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춘향 영정은 미인도 형태의 춘향상을 그린 이당 김은호의 유화작품 한 점(가로 122㎝×세로 203㎝)과 진주화백 강주수의 작품 한 점(가로 70×세로 170㎝), 1931년 일본 식산은행 임씨 성의 은행장(두취)이 페인트로 즉석에서 그렸다고 추정되는 작가 미상의 유성 페인트작 한 점(가로 68×세로 106..
'광한루'의 편액은 낙전당 신익성의 글씨이다. 신익성(1588년 ~ 1644년)은 우의정 신흠의 아들이며 신감 남원부사의 조카로서 편액을 썼다. 선조의 딸인 정숙 옹주와 결혼하여 동양위에 봉해졌다. 인조 14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왕을 모시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파 대신들이 세자를 적에게 인질로 보내 화의를 맺자고 주장하자 칼로 위협하며 반대하였다. 후에 김상헌·최명길 등과 함께 선양으로 잡혀갔으나 소현세자의 덕으로 무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고 글과 글씨에 능했다. 저서로 '낙전당집'이 있다.
관찰사민■■선정비(觀察使閔■■善政碑) 비갓이 없는 월두형 비석이다. 비신의 높이·폭·옆은 172㎝×53㎝×18㎝이며, 농대석의 폭과 옆은 97㎝×43㎝이다. 전라도관찰사는 조선시대 8도(八道) 중 전라도(全羅道)의 장관(長官)으로 종이품(從二品)이고, 정원은 1원이다. 관찰사는 모두 문관(文官)으로 임명하였으며 배임(拜任)한지 2년이면 체임(遞任)되었다. 1395년(태조 4)에 처음으로 설치하고 감영(監營)을 전주(全州)에 설치하였으며, 도내의 행정(行政)·사법(司法)·군사(軍事)의 사무를 총괄하고 관하 부윤(府尹)·목사(牧使)·부사(府使)·군수(郡守)·현령(縣令)·현감(縣監)을 지휘 감독하였으며 또한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 從二品)와 전라수군절도사(全羅水軍節度使: 正三品 堂上)를 겸임하였으며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