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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 (11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돌쇠마을이라 불리우는 수문1리의 마을자랑비입니다. 수문리는 면적 4.34㎢, 인구 103가구 280명(1999년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갈평리(葛坪里), 서는 탄부면(炭釜面), 남은 관기리(官基里), 북은 외속리면(外俗離面)에 접하고 있다. 본래 보은군 왕래면의 지역으로서 수문이 있었으므로 수문(水門)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하리 외속리면 불목리 일부와 탄부면 구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문리라 해서 마로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수문리의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건너말 : 방아실 남쪽에 있는 마을. 방아실 건너쪽에 있음. 돌쇠마을 : 수문 서북쪽에 있는 마을. 수문리 원앙골에서 흐르는물이 팡산 정자나무 밑에서청룡암을 휘돌아 흘러 소용돌이가 생기기 때문에 ‘돌소’라고 하..
원도원마을의 유래내용과 함께 무릉원비가 이곳에 자리한 이유등에 대하여 상세히 적어놓은 원도원마을 자랑비입니다.중국의 무릉도원과 버금가는 마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충과 효를 간직하고 그동안 괴산군에서 주최한 행복마을 만들기 대회등에서 우승도 하며 주민들이 일심으로 살기좋은 마을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마을자랑비는 마을회관옆에 무릉원비와 남직현공덕비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암석을 이용하였으며 대리석에 오석에 마을의 내력을 새겨 삼입하여 놓았습니다.
쌍암리는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내북면, 서쪽은 신문리, 남쪽은 고석리, 북쪽은 내북면과 청원군에 접해있다. 본래 회인군 동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개동, 능암리, 계암리를 병합하여 능암과 계암의 이름에서 따라 "쌍암리"라 하고 보은군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능암 : 쌍암리의 중심마을 고려때 웅암사란 절이 있던 곳으로 절이 없어지고 마을이 생겼다하여 웅자에서 아래 네점을 버리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동재정씨 집성촌이다. 지바우 : 능암 서남쪽에 있는 마을 계목와 큰 바위가 있다. 초갯-골 : 능암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풀이 무성하였다 한다. 장수굴 보은군 회인면 능암리 마을 뒷산에 "장수굴"이라 부르는 굴이 있다. 조선 선조때의 이야기다. 이 굴에 장수라고 자칭하..
삼산리는 면 최북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은 갈산리, 서쪽은 현암리와 청주시 산성동, 북 쪽은 내수읍에 접해 있는 산촌 마을이다. 삼산리는 청주군 산내이하면의 지역으로 상당산. 인경산. 태봉산이 둘러쌓여 三山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부를 갈산리에 넘겨주고, 화문동을 병합 하여 랑성면에 편입되었으며, 1936년 둔병이를 2리로 분구 하였다. 개문(둔병이) : 새말 북동쪽에 있는 마을(삼국이 정립되고 있을 무렵 병사가 마을에 집결했던 지역이며, 효자촌이라고도 함.)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 지역으로 조선 영조 후반(1750-1776)에는 용동리와 손목포리만이 있었으나 헌종대(1845년경) 관곡이 새로이 형성되 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는 관곡리가 상관곡과 하관곡으로 분리되어 용동리, 양곡리, 화원리, 손목포리로 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화원리의 일부를 손목포리의 일부를 종암리로 넘겨주고 용동과 관곡의 이름을 따서 용곡리라 하여 미원면에 편입되었으며 자연부락으로 손목(주막거리), 양골, 해평, 용골이 있음. 현재는 1,2리로 분구되어 있습니다.고령신씨 시조 검교군기감 신성용의 11대 손 영성군파 이조참판 동양 재난공이 연산군때 양골에 자리잡은 이래 용골, 손목포, 해평에 이르기까지 고령신씨가 많이 살았는데 현재는 34세대 정도가 살고 있다. 양골..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긴밭재’는 1차적으로 ‘긴밭’과 ‘재’로 분석된다. ‘긴밭’은 다시 ‘긴’과 ‘밭’으로 나뉜다. ‘긴-’은 ‘길다[장(長)]’의 관형형이니, ‘긴밭’은 ‘길게 늘어진 밭’으로 풀이된다. 또한 ‘재’는 ‘고개’이니, ‘긴밭재’는 ‘길게 늘어진 밭에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고개가 기다란 밭과 연결되어 그 고개를 그냥 ‘긴밭재’라 부른 것이다. 이 마을은 달리 ‘진밭재’로도 불리는데, 이는 ‘긴밭재’의 ‘긴-’이 구개음화에 의해 ‘진-’으로 바뀐 결과이다. ‘긴밭재’는 달리 ‘장전(長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긴밭재’에서 ‘긴밭’만 한자로 옮긴 결과이다. 성화동의 도로변에 있는 마을이다. 이는 성화동과 개신동의 경계에 해당한다. 서부도로를 따라 오송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