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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주가 고향이신분들은 이 자리를 한일은행자리로 기억하실겁니다. 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 금융기관이다. 농공은행은 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지방 금융의 핍박을 우려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정부 창고를 건설하고 미곡의 담보 대부, 부동산의 담보 대부를 행하였다. 그러나 그 시설이 응급적·과도적인 것에 불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 자원도 빈약하여 지방 금융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없었다. 이에 정부는 1906년 3월 「농공은행조례(農工銀行條例)」를 공포하여 농공은행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지방 산업의 발전과 금융 유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각 관찰도(觀察道) 단위를 영업 구역으로 하는 농공은행을 설립하였다. 1..
일제강점기 시절 호암지를 대대적으로 축조할 때 여러가지 사고등으로 죽은 일본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으로 전해 집니다. 특히나 일본인 잠수부가 공사를 할 때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아마 그 일본인을 기리기 위한 탑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암석을 세워 위령탑(慰靈塔)이란 글씨를 각자 하여 놓았습니다. 1937년 5월23일 자와 25일자 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충주수리조합 호암제에서 통관(桶管) 파손 수리공사를 하던 인천 조일조(朝日組) 잠수부 고하만치(古賀萬治·44)씨가 5월 17일 익사하자 닷새 만에 한국인 제자 김성손(27) 씨가 높은 수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신을 건져냈다. 충주수리조합은 조합장과 충주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지낸 뒤 고하만치씨의 매부인..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영덕리마애불이 위치한 곳에 있는 성암사 절에 있는 멋진조각의 의자입니다. 이빨이 있는것으로 보아 악어의 머리를 조각한 듯 하고 뒷쪽으로는 공작새도 있습니다.자세히 보면 몇 군데 더 조각하여 놓은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충주 미륵사지에서 정비중 출토된 석물입니다. 동물의 머리를 형상화 하였는데 무슨 동물일까?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사지에서 석굴발굴 공사를 하면서 새로 발견된 불신입니다. 불신의 하체와 불두는 파손되어 불신만 있습니다. 불신에는 화려한 목걸이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손에는 약합이 들려있어 약사불로 추정이 됩니다. 미륵대원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grandculture.net) 미륵대원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변천]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 chungju.grandculture.net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새로 발굴된 석사자상입니다. 조각은 섬세하지 못하지만 사자의 갈기등이 표현하였습니다. 기둥처럼 두툼하게 앞발을 조각하여 놓았으며 앉아 있는 모양을 취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사자가 두려움이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조복시키는 ‘백수(百獸)의 왕’으로 신격화되거나 제왕으로 상징되었다. 또 그 용맹함 때문에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제왕과 성인의 위력을 사자에 비유하여 불교경전에서도 석가를 ‘인중사자(人中獅子)’라 칭하였고, 그 설법 또한 모든 희론(戱論; 쓸모없는 이론)을 멸하는 것에서 ‘사자후(獅子吼)’라 하였다.[출처 : 법보신문] "고승법현전’에는 사자가 크게 울면 모든 마귀들이 두려워하여 따른다는 기록이 있다. ‘화엄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