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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 (305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괴산다리를 건너 만남의 광장서 부터 시작하여 송동리들어가는 다리초입까지 이어진 벚꽃길입니다. 괴강을 따라 주욱 이어진 벚꽃길이 참 좋습니다.흐르는 괴강을 바라보며 활짝핀 벚꽃을 구경하니 시간 가는줄 모르겠습니다. 중간 중간에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으며 차량의 통행이 없으므로 가족나들이로 걷기에 참 좋습니다. 주민들의 편의시설로 중간에 벤치와 이동식 화장실도 지자체에서 구비하여 놓았습니다.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에 있는 당간지주 입니다. 시간이 되면 일부러라도 발길을 하는 곳입니다. 당간지주도 보고 가까운 산막이길도 산책하고 시간여유가 된다면 갈론구곡까지 걸음을 합니다. 언제나 보아도 참 좋은 외사리 당간지주 입니다. 칠성면 외사리 당간지주(七星面 外沙里 幢竿支柱) (tistory.com) 칠성면 외사리 당간지주(七星面 外沙里 幢竿支柱) 칠성면 외사리 당간지주(七星面 外沙里 幢竿支柱) (tistory.com) 칠성면 외사리 당간지주(七星面 外沙里 幢竿支柱)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king6113.tistory.com
산 좋고 물 맑은 우리 문광(文光)은 괴산군의 중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괴산읍이 인접하고 동쪽으로는 칠성면 서쪽으로는 청안면과 사리면 남으로는 청천면이 경계하고 있고 장자봉(莊子峯 585미터)과 배미산(倍嵋山 546미터)이 웅장하게 높이 솟아 있으며 달천강 지류인 성황천과 광덕천이 흐르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잉근내군(仍斤內郡)에 영속된 이후 신라 경덕왕때 괴양군(槐壤郡)으로 고려초에 괴주군(槐州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조선왕조 태종13년(1413)에 괴산군으로 개명된 이후 1914년에 문광면 행정구역이 10개리(광덕,송평,문법,대명,유평,신기,양곡,방성,흑석,옥성)로 개편되어 5657ha의 면적을 갖고 있으며 문법리와 광덕리의 앞 글자를 따서 문광면이라 칭하였다. 이제 우..
탄부면 임한리 솔밭에 있는 유홍선생의 시비(詩碑)니다. 하나는 주사 마유명과 주고받은 광국시이며 또 하나는 아버지의 친구분의 생신축시입니다. 주사마유명화답광국시( 主事馬維明和答光國詩)입니다.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황마(黃麻)로 구궐(九闕)을 돌이키게 하니 밝은 해가 나의 작은 정성을 비춰주네 한시(漢市)는 신풍(新風)의 술이요 태성(泰城)에는 세류(細柳)의 진영(陳營)이라. 귀향 길에는 흥이 저절로 나고 구슬같은 곡조로 꾀꼬리는 환송하는 듯 하네 압록강가에 봄이 깊으니 아름다운 경치가 십리(十里)에 환하구나 선군사마동기생신축시( 先君司馬同期生辰祝詩) 가을 국화꽃은 축수의 자리에 빛났고 기쁘고 즐거움이 아름다운 생신에 미치네 옥을 굴리는 듯 맑은 창곡은 흐르고 산이 기울도록 윗분은 취하셨네 의기양양한..
군서면 사기점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석장승과 돌탑입니다. 원래는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목장승을 세웠었는데 지금은 석장승으로 교체 해서 세워놓았습니다. 석장승 옆으로는 수살제개념의 돌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아 건축물이다. 청안현의 동헌건문로 태종 5년(1405)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으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1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1915년에도 수리가 있었고, 한때 청안지서로 사용되어 변형이 있었으나 1981년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홑처마에 공포를 짜지 않은 형태이다. 주춧돌은 다듬은 돌과 자연돌을 함께 사용하였고, 둥근 기둥에 일부 네모 기둥을 세우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조선 후기의 동헌 건물에 비하여 격식을 낮추어 지은 검소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