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단지주혈
- 화양구곡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부도
- 현충시설
- 법주사
- 효자문
- 문경새재
- 각연사
- 국립청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사과과수원
- 청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외사리 당간지주
- 문의문화재단지
- 사인암
- 충북의 문화재
- 선돌
- 효자각
- 곡산연씨
- 상당산성
- 청풍문화재단지 비석
- 경주김씨
- 공산성 선정비
- 부여박물관
- 공주박물관
- 밀양박씨
- 보성오씨
- 충주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50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1911년에 출생하여 보은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의 모임의 기념비입니다.화성회기념비(和省會紀念碑)라고 적혀있으며 1987년에 당시 회장이었던 박기종의 주도아래 건립하였습니다.전면에는 화성회기념비(和省會紀念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화성회 회원들의 이름이 각자되어 있습니다. 보은읍 장신공원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탄부면 임한리에 있는 기계인 유창식선생의 공적비입니다. 당운 유창식 선생 공적비(塘雲 兪昌植先生 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유창식 선생은 1895년 임한리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는 낙후되어 있던 농촌의 교육에 힘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1925년에 사재를 털고 독지가들의 협조로 육영강습원을 개설하여 농촌청소년 교육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과 지속적인 재정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1936년에는 폐원하고 말았다. 선생은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여 일제의 수탈과 핍박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당시의 농촌의 모습에 안심하고 농사에 매진할수 있는것은 가뭄과 장마등으로 부터 안전하게 농사지을수 있는것은 수리안전답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1952년에 행정기관의 도움을 얻어 수..
임한리 솔밭에 있는 선조때 좌의정(左議政) 유홍(兪泓)의 광국훈공(光國勳功)의 사적을 기록한 비로 1998년 후손들이 숲속에 세웠다.임한리는 기계유씨 杞溪兪氏 들이 대성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충목공송당유선생광국사적비( 忠穆公松塘 兪先生光國事蹟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사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임한리는 옛 조선시대 상주목(尙州牧)의 임언부곡(林堰部曲)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뒤에 보은군(報恩郡) 왕래면(旺來面) 관할지역으로서 숲이 많으므로 임한이 또한 임한(林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임한리(林閑里)라 해서 탄부면(炭釜面)에 편입되었습니다. 임한리에 자리한 솔밭은 사진작가들의 출사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유홍 은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지숙(止叔), 호는 송당(松塘)..
얼마전에 보은읍 교사리 춘수골에 있는 조선조와 일제강점기 시절 보은현감과 군수의 공적비에 눈을 찌푸리게 하는 낙서를 발견하고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니 공적비등은 개인의 소유이므로 군 차원에서는 해줄수 있는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름 담당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은에 일이 있어 춘수골 비석을 찾으니 역시나 그냥 그대로 아픈 얼굴을 보여준다. 참 마음이 쓰리다. 춘수골 비석은 언제까지 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야만 하는걸까? 보은 춘수골 비석의 수난 (tistory.com) 보은 춘수골 비석의 수난 보은읍 교사리 춘수골 입구에는 보은을 스쳐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현감과 군수의 비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의해서 눈살을 찌..
수한면 산척리 마을광장 보호수아래 놓여있는 연자맷돌입니다. 산척리는 북으로 하궁리, 동으로 보은읍 용암리, 남으로 동정· 병원리, 서로는 도로를 경계로 율산리와 접해있다. 본래 보은군 수한면지역으로 큰고개 밑이 되므로 산자골 또는 산척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은로리와 회인군 동면 산척리 일부를 병합하여 산척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반목과 웃산자골이 있으며, 지명으로는 고두리, 달박골, 도장골,보독골,서농골,안산,할무당골,회골등이 있다 연자맷돌과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는 동리의 지명은 반목이다. 반목은 외부에서 보면 마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산속깊이 자리한다. 워낙 산깊이 있다보니 피난처로 유명했다고 한다. 마을이 외지다 보니 시내버스도 율산 산저골에서 들어오는 길이 확포장되고 그..
꽃 피고 새잎 나면 길 떠난다 하시더니 봄바람이 겨워 꽃비 내리고 연두빛 어린 새순 돋아나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 찬란한 봄햇살 받으며 영원한 안식처로 가셨습니다.새벽별 이정표 삼아 달구지 몰며 아침을 밝히시며 논 밭을 일구신 아버지 베 짜고 비단 짜서 이부자리 만드시던 어머니.손발이 다 닳아 가시손이 되어서도 일손을 놓치 않으시더니 눈보라 세찬 정월 어느날 자리에 누우신 후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시고 홀연히 가셨습니다.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키우신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란 자손 모두는 크나큰 사랑을 길이 남기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2009.7.3 세상에서 가장 큰사랑으로 어머니 아버지! 동정리에서 산척리로 너머가는 동정리 길목에 있는 비석입니다. 비각을 보고서는 무언가 하고 보니 부모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