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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45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군서면 사기점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석장승과 돌탑입니다. 원래는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목장승을 세웠었는데 지금은 석장승으로 교체 해서 세워놓았습니다. 석장승 옆으로는 수살제개념의 돌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마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차일피일 미루웠던 마음이 미워서일까? 사정리 옥개석은 나에게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다. 몇 번이고 구석구석을 뒤져 보았지만 볼수가 없었다.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 겠지만 인적이 끊긴 마을에는 개들의 짓는 소리만 가득하다. 담장 밑에 있는 석탑부재를 찾으려고 했지만 볼수가 없었다. 마침 길에서 만난 동네주민에게 여쭤보니 안보이는지 꽤 되었다고 한다. 아마 누군가의 손을 탄 모양이다.저 마늘밭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밭정리를 하면서 다른곳으로 치웠나? 한번 더 발걸음을 해야할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발걸음을 하여 찾아보았지만 역시 찾을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정리사지 라는 명맥을 유지해주던 옥개석은 사진속에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또 어디선가 이 곳을 그..
사정리 마을 이름이 있게 한 사기점은 고려 때부터 사기를 구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곳곳에 자기 파편이 흔한데 밭을 일구고 땅을 파헤쳐 지금은 사기를 구웠던 가마터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사기점에는 또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절터 흔적은 한 가정집에 남아 있는데 기록이 없어 절의 이름이나 창폐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현재 1개씩 남아 있는 탑 옥개석과 장대석으로 보아 고려때 유행하던 양식이어서 고려시대의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행정에는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이 13대 이상 살고 있다. 행정마을 입구에는 마을에서 쓰던 연자방앗돌이 있고, 청년들이 돈을 모아 만든 유래비가 오가는 이를 반긴다. 청년들은 또 군서-옥천읍간 37호 국도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에 살구나무를 심어 마을의 옛 지..
군서면 사정리 사기점 마을입구에 있는 강인숙의 불망비입니다. 강공인숙불망비( 姜公寅淑不忘碑 )라고 적혀 있습니다. 마을발전에 열심을 내었던 강인숙의 공을 잊지않기 위하여 마을입구에 세웠습니다. 옆에는 사기점마을 유래비가 서있습니다.
군서면 사정리 마전마을 앞에 있는 비석 2기입니다. 마전동(麻田洞)은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가인 토정 이지함 선생이 얽힌 전설을 간직한 곳입니다. 군서면에는 군서 8명당이란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작약미발(芍藥未發, 함박꽃 봉오리 모양의 지형)’이고 사정리와 뒷산인 홍산의 형세가 그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전마을 앞에는 1914년에 세운 김기영선생과 1930년에 세운 김성희선생의 송덕비가 나란히 있다. 김기영선생과 김성희선생은 군서면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풀어 세금을 대신 내주고, 양식을 주는 등 선행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오위장김공기영송덕비( 五緯將金公基榮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大正3年(1914)입니다. 김기영 (1825.12.3 ~ 1914.12.16..
옥천군 군서면 오동리 사거리에 위치한 미성식당 햔켠에 자리하고 있는 군수를 지낸 한상욱의 청근선정비입니다. 한상욱의 옥천군수 재임기간은 1966.03.29 ~ 1968.04.30일 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무신3월(1968)입니다.주민일동의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군수한후상욱청근선정비( 郡守韓侯相彧淸勤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오동리라 부르게 된 것은 풍수설에 군서 8명당 중의 하나인 ‘오동제월(梧桐霽月)’이라는 명당이라 하여 오동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동리는 1908년 군서면을 일소면, 이소면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군서면으로 통합한 후인1930년대 중반까지도 오동리에 군서면사무소와 군서주재소가 있었다. 군서면사무소는 1935년께 현재의 소재지로 이전했다. 오동리는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