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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권근 삼대 묘역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수성구 시흥동에 있던 권근의 묘소를 1444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로 천장하면서부터, 1505년까지 4대 7위의 묘소(부인 합장 포함 13위)를 정한 곳이다. 후에 현손 권헌(權憲)과 권유(權愈)의 묘를 천장하여 모두 9위, 합장과 쌍분을 포함한 17위의 묘소도 같은 장소에 있게 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 176㎝로, 비신의 높이 116㎝, 너비 61.5㎝, 두께 24㎝이다. 상부에는 12엽의 연화문을 조각하였고,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의 흔적이 있다. 묘비는 위쪽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횡서하고, 아래에 종서로 ‘홍치을축오월졸십월장 통훈대부결성현감권료묘 정덕정묘이월입석(弘治乙丑五月卒十月葬 通訓大夫結城縣監權..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해준의 효자각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된섬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민해준의 효행은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하고 있다 민해준이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다. 이때 비를 피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함께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가 바위가 무너지려 하자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내곤 자신은 바위에 깔려 죽음을 당하였다. 이 같은 민해준의 효행을 기려 훗날 유림과 동리에서 효자각을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효자민해준지려(孝子閔海俊之閭)’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현재 민해준의 후손들은 알 수가 없다. 민해준이 소유하였던 토지 일부만이 남아 있는데, 이를 마을에서 공동 관리하면서 수익금으로 매년 마을 사람들이 제사..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 권념의 묘비. 권념(權念)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경(仲經), 초휘(初諱)는 권응(權應)이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정난공신 안천군 권준의 차남이다. 모친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永春縣夫人 海州鄭氏)로, 정도공(貞度公) 정역(鄭易)의 딸이다. 음보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거쳐 옥천(沃川), 마전(麻田)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권념의 묘는 원래 지금의 위치를 기준으로 동쪽 능선에 있었는데, 1990년 부인의 묘소와 합장하였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부는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104㎝이고, 비신은 높이 77㎝, 너비 53㎝의 크기이다. 상부에는 연화문 9엽을 돌려 조각하였고, 양옆은 연잎을 3단으로 말아올렸다...
권준은 조선 전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오미(五美).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해주정씨로 찬성 정이(鄭易)의 딸이다. 1422년(세종 4) 문음(門蔭)으로 종묘부정에 제수되고 1430년(세종 12) 호조좌랑이 되었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宗簿寺判官)으로 강원도와 함길도에 가서 기민 구제 상황을 시찰하였다. 사헌부지평, 1438년(세종 20) 경기경력, 1444년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을 지내고 이듬해 경기도 기민 구제를 위한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음죽현감, 1452년 우부승지, 좌부승지, 우승지, 사헌부대사헌이 되고, 정난공신 2등에 녹훈되어 안천군(安川君)에 봉해졌다. 1455년(세조 1) 형조판서에 올라 선위사(宣慰使)로 신천에 ..
권근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彝)·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한때 청주옥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뒤에 다시 익주(益州)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어 충주에 우거(寓居)하던 중 조선왕조의 개국을 맞았다. 조선왕조에 출사하여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 등을 지냈고, 1396년(태조 5) 이른바 표전(表箋) 문제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귀국한 뒤 개국원종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