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상당산성
- 각연사
- 경주김씨
- 화양구곡
- 문경새재
- 충북의 문화재
- 보성오씨
- 부여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곡산연씨
- 선돌
- 부도
- 효자문
- 화양동 암각자
- 사과과수원
- 밀양박씨
- 국립청주박물관
- 사인암
- 청풍문화재단지 비석
- 공산성 선정비
- 법주사
- 현충시설
- 영모재
- 효자각
- 충주박물관
- 공주박물관
- 단지주혈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문의문화재단지
- 청주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권제는 본관은 안동. 자는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판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음보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었고 후에 감찰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416년(태종 16) 성균관사예, 1418년 의정부사인·전사소윤·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원년) 사헌부집의가 되어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승정원동부대언·승정원좌대언을 지냈다. 1423년(세종 5) 모친상을 마친 후 집현전부제학에서 예조참판·대사헌·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평안도관찰사겸평양부윤, 1430년(세종 12) 경창부윤, 1431년 경기도관찰사, 1433년 예조좌참찬·예조판서, 1435년 ..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이듬해 집현전교리로 『역대병요(歷代兵要)』의 음주(音註)를 편찬하며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헌의 묘비 입니다. 권헌(權憲)의 본관은 안동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景公) 권제(勸踶), 할아버지는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이며, 아버지는 길창군(吉昌君) 권걸(勸傑)이다.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음보로 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에 올랐고, 이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1501년(연산군 7) 문과에 합격하여 형조정랑겸승문원교리(刑曹正郞兼承文院校理)에 이르렀다. 1505년(연산군 11) 향년 40세로 별세하였다. 묘비는 1520년(중종 15)에 아들 권눌(勸訥)이 세웠다. 묘비는 복련이 새겨진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한 형태이다. 상부에..
충복(忠僕)에 관심이 있으시니 혹시나 내가 더 찾아볼까 하다가 인터넷에서 권근묘소에 충복 천쇠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았습니다. 무덤은 예전서 부터 있었는지는 몰라도 비석은 근간에 새겼습니다. 삼대에 걸쳐 권씨가문의 노비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천쇠의 꾸준한 주인을 향한 그 마음을 잊지않기 위하여 권씨가문에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 시절 무슨 연고로 무덤을 만들어 주었을까요? 두고 두고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깨끗히 지금도 정리된것으로 보아 권씨가문에 나름 열심을 기쳤나 봅니다.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김영일의 기념비입니다.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으나 동네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힘쓴 김영일의 은공을 잊지않기위하여 부락민 일동으로 1973년도에 비석을 세웠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한글로 "장하고 아름답다 그이름 천추에 길이길이 빛나리 김영일기념비"라고 적혀 있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1973년 8월입니다, 추측컨데 마을의 여러가지 일에 있어 물심양면으로 힘쓴 김영일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한글로 새긴 비석으로 희소성이 있습니다.
소이면 충도리 아랫볕돈에 있는 송덕비입니다. 비석은 마을 초입에 둘어가는 부분에 세워져 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겪으면서 당시 마을에 마을회관이 없어 힘들어 하던 시절 당신의 토지를 희사하여 마을회관을 짓도록 힘쓴 유현종의 공을 기리기위하여 세웠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현종님은 상품이 온순하시고 인보와 상조의 정신이 투철하시며 새마을 회관 건립에 있어 자신의 많은 사재를 희사하여음으로 그 후의를 오래보존키 위하여 이 비를 부락민의 이름으로 새깁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78년 5월에 새겼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유현종송덕비동민일동(劉鉉鍾頌德碑洞民一同)라고 새겨 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유현종의 송덕내용이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