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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16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증평읍 남하리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曾坪邑 南下里 南下里寺址 磨崖佛像群) (tistory.com) 증평읍 남하리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曾坪邑 南下里 南下里寺址 磨崖佛像群)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南下里寺址 磨崖佛像群)은 증평읍 남하3리 염실마을 뒤편의 남대산을 배경으로 동향해 자리잡은‘탑동 마을’서편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마애불상군은 충청북도 지 king6113.tistory.com 남하 3구 염실마을에는 삼불(三佛)을 새겨 넣은 바위가 있다. 바위 옆에는 탑이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바위를 일러‘탑바위’라고 한다. 바위는 흡사 병풍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앞에는 작은샘이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녀자가 탑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면 반드시 아들을 얻는다는 영험담(靈驗譚)이 전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
남하리 3층석탑(南下里寺址 三層石塔)은 증평읍 남하3리 염실마을 뒤편의 남대산을 배경으로 동향해 자리잡은‘탑동 마을’ 서편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일제강점기의 기록인『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탑을 언급하면서 증평면 남하리 염곡(廉谷)의 북서쪽 약 400간의 거리의 계곡에 있는 석탑은 3층으로 높이는 10척이며, 완전하다고 했다. 이 석탑은 4.4m* 3.4m *1.7m 크기의 자연 암반 위에 한 면의 길이가 1.8m·높이 0.35m의 네모난 대석(臺石)을 기단으로 삼은 높이1.65m의 3층 석탑으로서 탑신부(塔身部)와 상륜부(上輪部)의 노반(露盤)이 남아 있다. 이 석탑 대석의 하면에는 작연 석재를 끼워 수평을 맞추었으며, 대석의 윗면이나 옆면은 물론 탑신(塔身)에는 우주(隅柱)와 ..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南下里寺址 磨崖佛像群)은 증평읍 남하3리 염실마을 뒤편의 남대산을 배경으로 동향해 자리잡은‘탑동 마을’서편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마애불상군은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그리 흔치않은 삼존불(三尊佛)과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형식을 비롯해 여래입상(如來立像)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불상군(佛像群)이다. 화강암벽의 3면에 모두 다섯 구(軀)의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 본존불(本尊佛)과 좌우 협시불(脇侍佛)의 삼존불을 두 고 왼쪽에 여래입상(如來立像), 오른쪽에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배치돼 있다. 이곳 다섯 구의 마애불상 모두 원만자비형(圓滿慈悲形)의 상호(相好)와 당당한 체구를 보여주고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이 불상군은 전체적인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
증평읍 남하리에 위치한 남하리사지에 있는 돌확입니다. 남하리사지에 있는 삼층석탑의 기단으로 사용되는 자연암반 끝자락에 인공으로 만든 돌절구입니다. 이 곳에 자리하고 있던 사찰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증평읍 남하리 증평민속체험관옆에 자리하고 있는 석조불 중 석조불을 바라보며 오른쪽에 있는 석불입니다.증평읍 남하2리 미륵마을에 있는 석조불입니다. 불두가 훼손되어 후대에 보수하였으며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자연석 대좌위에 세워져 있으며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석조불의 원래 위치는 알수 없지만 마을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웃골’에 있는 성주사라는 절에 있던 석불로 알려지고 있습니다.지금도 웃골에는 절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절터’는 ‘절’과 ‘터’로 나뉘며, ‘절이 있는 터’로 풀이됩니다. 6ㆍ25 전쟁 전에 ‘성주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륵신앙(彌勒信仰) - 증평군 민속에서 미륵신앙은 바위를 신격화해 숭배하던 암석신앙의 한 유형인 선돌신앙이 불교가 전래된 뒤에 석불신앙으로 옮겨..
증평읍 남하리 증평민속체험관옆에 자리하고 있는 석조불 중 가운데 석불입니다. 많은 부분이 파손되어 불두 등을 후대에 보수하였는데 전문적인 솜씨가 아닌 듯 조금은 조악해 보입니다. 두 구의 작은 불상들은 현재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였는지 알 수 없으며, 얼굴 등에 시멘트가 덧붙여 있는 등 원형이 훼손돼 있습니다. 작은 불상들은 1949년 속리산 법주사의 윤월인(尹月印)스님이 이 마을 뒤편 골짜기에 성주사(聖住寺)라는 절을 짓고, 마을주민들의 협조로 쓰러진 불상을 세웠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들 불상들을 마을의 수호불(守護佛)로 보호하고 불공을 드리고 있으며, ‘미륵마을’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