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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92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은행리는 면의 동부에 위치하며 2개 행정리동과 4개반 153세대 529명이며 동은 가덕면 시동리 서는 두산리 남은 인차리 북은 문주리이다. 은행리(은행정이, 으능징이, 은행정)는 본래 청주군 남일상면의 지역으로서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은행정이 변하여 으능징이 또는 은행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老隱東, 老隱東里, 회인군 남면의 등곡리를 병합하여 은행리라 하여 남일면에 편입되었다. 忠州 池氏 집성촌으로 進士公 後孫 약 40세대 140명 거주하고 있다.
가덕면 한계리에 있는 신평이씨의 묘역입니다. 조선조 효종대에 영천군수를 지낸 이구(李昫)의 무덤과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이도형(李道炯)의 무덤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역은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신평이씨 대동보 《무오보(戊午譜)》의 기록에 따르면 신평 이씨의 시조는 백제 사평현(沙平縣)[1]의 호족이었던 이인수(李仁壽)다. 이인수의 아들인 이주(李珠) 역시 백제의 호족이었고 이주의 증손자 이석덕(李碩德)은 통일신라의 지방관을[2] 지냈다고 한다.하지만 대개 한국의 성씨들이 그렇듯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초 사이의 계보는 여러 혼란을 거치며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고려 예종 때 문하시중 평장사 직위를 지낸 이덕명(李德明)을 중시조 1세로 삼아 대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고려시대를..
은행리 지명을 갖게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수세는 양호한 편입니다.지금의 지여해 충신각은 1932년에 중건하고 196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현재 외손인 은진 송씨(恩津宋氏) 안소당공파(安素堂公派)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일면 은행리에 있는 지여해 충신각입니다. 지여해는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湧奇)의 후손이며, 시직 지영수(池永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지운(池芸)이고, 아버지는 사과 지경담(池景湛)이며,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郞) 김정현(金挺賢)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
문의면 소전리 도로에서 후곡리로 가는 길가에 옹달샘이 있습니다. 옹달샘 위로는 작은 석탑도 쌓여 있고 무속터의 흔적이 보입니다. 옹달샘에도 치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용흥국민학교는 1934.05.01 문의공립보통학교 부설 후곡간이학교 설립인가 1941.03.31 문의공립보통학교 부설 후곡간이학교 폐교 1941.04.01 용흥공립국민학교 설립인가(1학급 48명) 1980.03.01 폐교(대청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 비석의 전면에는 용흥국민학교유적비( 龍興國民學校遺蹟碑 )라고 하여 문의면 소전리 대청호반이 바라보이는 곳에 사향탑(思鄕塔)과 함께 서있습니다.1996년 10월에 졸업생들의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
후곡리는 조선시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이성징(1608)의 호가 후곡임을 볼 때 그 이전에도 후곡으로 불리었음이 인정된다. 조선 영조 후반 이래 도곡리와 후곡리로 이루어져 있다가 1910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벌말 뒤골짜기가 되므로 후곡리라 하여 청주군 용흥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의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모두 수몰 이전하여 각기 타지로 전출하고 24호가 주택자금을 받아 새로이 한옥으로 이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몰전 까지만 해도 매우 큰 부락으로 200여 세대가 살았던 곳이다. 마을의 주된 부락은 마을 서쪽 금강변에 발달한 평야에 형성된 벌말(평촌)이며, 마을 남쪽은 노개골들이 있고 북쪽은 느저울들이 있다. 벌말은 충남 대덕군과 연결하는 벌말 나루터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