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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 정려각(旌閭閣)은 열녀 석천순(石川栒)의 처 연안이씨의 정려로 조선 인조(仁祖) 15년(1637)에 세운 것이다. 연안이씨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남편이 청나라 병사들에게 잡혀가 죽고 또 이씨를 난행하려하자 자결하였다. 그 후 그의 원혼이 연풍현감의 꿈에 나타나자 현감이 이 사실을 알고 이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 전한다. 한편 연풍 구읍지의 기록에는 석천순의 처가 병자호란 때 청병에 화를 입어 자살한 사실을 임금께서 알아 정려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녀각 안에는 1927년 이범식(李範植)이 개각(改刻)한 「烈女李氏之閭」 “謹按邑誌 有乃延安李氏 丙子亂 爲夫君而死 天地共動 山川含悲 事聞汪閭于此 以倡善而觀感 自多更揚之 而石裔褒彰也”라 쓴 편액이 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초계변씨(1877~1939)는 평강인 전재우에게 시집와 부도를 지키며 길쌈으로 가업을 삼았다. 또한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공경으로서 받들었다. 시아버지가 병을 얻어 자리를 보존하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약을 달여서 올렸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돌아기시자 예의로서 삼년상을 모셨다. 그 후 시어머니가 병이 들어 5년간을 머리를 빗기며 의복과 이불을 빨아 입히고 덮어 주었다. 상을 당하지 시아버지 때와 같게 하였다.불행이 겹쳐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오랫동안 병석에 눕자 밤낮으로 옆에서 수발을 들었으며 밤이면 북두칠성에게 기도하고 아침이면 초정약수를 길어다 미음을 끓여 간호하였다. 남편이 죽은후에도 자식들을 잘 키워 의로운 방향으로 교육을 시켰다.비석은 1975년에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절효부초계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