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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읍 비중리 안정나씨삼효문(內秀邑 飛中里 安定羅氏三孝門) 본문
내수읍 비중리 마을로 들어서면 안정나씨가문의 사당인 홍양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삼효각은 홍양사 앞마당에 있다.
삼효각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飛中里)에 있는 효자각으로 안정나씨(安定羅氏)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운걸(羅云傑)과 그의 아들 나빈(羅濱), 나린(羅潾)의 효성을 기리기 위한 효자각으로 1638년(인조 16)에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72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는 3인의 정문 편액을 걸었다. 밖에는 ‘삼효문(三孝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나사종의 아들 나운걸(羅云傑)[1456~1495]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함을 한탄하여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허종(許琮)의 여진 정벌에 백의종군하고 올적합을 죽이지 못함에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삼년상이 끝나는 날 자결하였다.
나운걸의 아들 나빈, 나린(羅潾)[1475~1495] 형제 또한 효성이 깊어 수차 여진 정벌에 종군을 자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3년상이 끝나는 날 피를 토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삼세가 같은 날에 기일이 되는 충효를 남겼다.
안정(安定)은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의 옛 지명으로 신라시대에 아시혜(阿尸兮) 또는 아을혜(阿乙兮)로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안현현(安賢縣)으로 고쳤으며,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정현(安定縣 : 安貞縣)으로 개칭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두고 비옥현도 함께 관할하였다. 1421년(세종 3) 안정과 비옥을 합쳐서 안비현(安比縣)으로 개칭하였다가, 1423년(세종 5) 비안(比安)으로 고쳤다. 현재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이 되었다.
시조 나천서(羅天瑞)는 1370년(공민왕 19) 이성계(李成桂)가 요동을 정벌하고 귀환할 때 추위와 기근으로 아사지경에 이른 만오천여 군사를 수백 석의 양곡을 조달하여 무사히 생환시킨 공으로 안정백(安定伯)에 봉해졌으며 이후 안천군(安川君)으로 이봉되었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안정(安定)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安定羅氏] (성씨와 본관, 2011. 1. 14.,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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