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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51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날씨가 화창하니 좋습니다.오늘은 아내와 속리산 국립공원 세조길을 걸어서 복천암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평일 인데도 등산객들이 많이 붐빕니다.법주사는 내려올 때 보기로 하고 세조길로 접어 듭니다. 세조길을 걷다보면 시원한 저수지도 만납니다.이쁜 마나님 사진도 한장 박아 줍니다. 저수지를 지나 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곳이 세심정입니다.세심정 까지는 계곡을 끼고 걷습니다.데크길도 있고 아스콘 길도 있습니다. 올라갈때는 아스콘 길을 따라 걷고 내려올 때는 데크길을 걸어 내려 왔습니다.길을 걸을 때 마다 들리는 계곡물소리가 머리를 맑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세심정에서 500여 미터를 더 올라가면 만나는 사찰이 복천암입니다.부도 보러가는 산길에서 찍은 복천암 입니다. 훈민정음 소나무라고 이름이 붙은 소나무 입니다.소나무..
산외면 이식2리 밤소 마을자랑비와 함께 서있는 송덕비입니다.인동장씨와 육인수의 송덕비가 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본래 보은군 산외면 지역으로서 속리천으로 옛날에 배가 다녔고 쉬었다가 가는 곳이라 하여 배쉰개, 배진개, 주식포, 주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북면의 천산리를 병합하여 "이시리"라 하였다.양짓말 : 배진개 마을로 양지쪽에 있다하여 양짓말 또는 웃말이라고부른다.새말 : 배진개 아래에 새로 생긴 마을밤소 : 배진개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밤나무 숲이 있었다고 하며 다른 지역보다 바람이 세게 불어 바람의 준말로 밤소라 하기도 하였다.인조때 안몽단(安夢丹)이 괴산군 청천면 신월리에서 이주옛날에 배가 다녔고 배가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배쉰개. 배진개.주식포등 으로 불리우다 191..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2km 거리에 자리한 탈골암이 위치해 있다. 창건설화로는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이곳에 절을 짓고 제자들에게 불교를 수도케 한 결과 인간번뇌를 해탈하여 조사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탈골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탈골암은 약사전, 연화당, 운하당, 대훈선원, 삼성전 등 총 5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약사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약사여래불상과 1909년에 조성된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199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 봉안된 약사불과 관음・지장보살, 탱화들은 1995년에 새로 봉안한 것이다. 약사전 안에 있는 높이 46cm, 지름 30.4cm의 동종은 용뉴가 U자형이며, 융기된 선으로 상・중・하대를 구획하였다. 탈골암주 영수스님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이라 한다. 경내..
속리산 법주사의 자연석에 새겨진 각자입니다.최송설당(崔松雪堂)이라고 각자 되어 있으며 이끼등이 많이 끼여 옆에 있는 작은 글자는 판독하기가 어렵습니다.최송설당이라는 각자는 속리산에 위치한 복천암의 자연암벽에도 각자 되어 있습니다. 최송설당 - Daum 백과 최송설당일제강점기 전재산을 희사하여 재단법인 송설학원을 설립한 육영사업가. 본관은 화순(和順). 본명은 미상이며 송설당(松雪堂)은 호이다. 경상북도 김천 출생. 아버지는 최창환(崔昌煥)이100.daum.net
희견보살상은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10월 7일 보물 제1417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앞에 성불(成佛)의 서원을 가지고 몸과 뼈를 태우면서 아미타불 앞에 향로공양(香爐供養)하는 보살로 법주사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나약한 인간에게 영원한 믿음이 내재하도록 백절불굴의 정신을 가르쳐주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대석 위에 큰 그릇 모양의 용기를 머리에 이고 부처 앞에 나아가는 공양불상으로 지대석·신체 부분·용기의 3부분로 되어 있다. 얼굴 부분은 심하게 손상되어 알아보기 어렵고, 신체는 군의(부처나 보살이 입는 치마처럼 생긴 아랫도리 옷) 위에 가사(袈裟)를 걸치고 있는데 띠매듭과 옷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발은 맨발..
법주사 경내 추래암 마애불의 한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암각화 입니다.승려가 말등에 물건(불경)을 싣고 가는 그림이 선각이 되어 있습니다. 법주사에 불경을 싣고오는 의선조사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의신조사가 인도 천축에 갔다가 백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도중에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었다고 합니다. 의신조사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에 비범한 기운도 느껴져서 그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전설을 그림으로 하여 이 곳에 선각한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