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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8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명동성당의 축소판과 같은 인상을 주는 성당은 1928년 공사에 착수하여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시잘레(Chizallet)신부가 설계하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했다. 길이 40m, 넓이 15m, 종탑높이 36.5m가 넘는 현재의 고딕식 붉은 벽돌 조 성당을 신축하였다. 재원과 석재의 부족뿐만 아니라 공사기간 중 장마로 인해 설계대로 건축할 수는 없었던 관계로 건물 규모도 설계보다는 축소했다고 한다.건물에 내부 천장이 원형 돔(Dome)으로 중앙 제대와 옆면에 4개의 소제 대가 있다.평면은 삼랑식의 장방형으로 열주와 천장에 의해 신랑과 측랑의 구별이 뚜렷하고, 좌우양측의 돌출한 출입구에 의해 라틴 십자형의 구성을 하고 있다. 임 가밀로 신부님의 3번 째 성당으로 성당이 산 중턱에 자리하여 주변 경관과 잘 어..
규정영당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입니다.신후재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으로,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좌부승지, 안변부사, 우승지, 좌승지, 진하겸사은부사, 승정원도승지,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 3월 갑술옥사 때 여주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4월에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오갑으로 돌아와 백련을 심고 ‘백련재(白蓮齋)’를 지어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규정집(葵亭集)』이 있다.규정영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1칸은 툇간이다. ‘규정영당(葵亭影堂)’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영당 주변에 돌담장을 돌리고 영당 앞에 솟을삼문을 세웠다. 솟을삼문 왼쪽에는 ‘..
백련서재는 조선시대의 문신(文臣)으로 숙종(肅宗) 때 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을 지낸 서암 신후재(申厚載 : 1636∼1699)가 갑술옥사(甲戌獄事 : 1694) 때 유배된 후, 숙종 23년(1697)에 석방되어이곳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전념했던 곳이다.서재 앞에는 연못이 있고, 못에는 백련(白蓮) 꽃이 있는데, 이는 신후재가 청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가지고 온 백련근(白蓮根)을 여기에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고, 백련만 번식하고 있다. 백련서재의 전체 배치는 동향(東向)으로 3단 정지한 후 그 첫째 단에 연못을 설치하고, 그 중앙에 둥근 모양의 섬을 하나 두고 있으며, 그 뒤로 정지된 둘째 단에는 정면 4칸·측면 1칸 반에 꺾이어서 정면 3칸·측면 1칸 반을 덧붙여서 ‘ㄱ’자형을 이루고 있는 ..
서상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려 했지만 감곡면지에 수록된 이야기 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비석을 자세히 살펴보지못한 불찰을 인정합니다. 다음 기회에 정확한 기록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면서 서상열 씨에 대한 기록을 아시는 분들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감곡면사무소 신설 당시 토지를 희사한 기록 외에는 다른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컨테이너 뒤편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의 전면에 서상열씨 기념비(徐相烈氏記念碑)라 되어 있고 옆면에 (감곡면사무소기성회)俾建面署(비건면서)刻石記名(각석기명)永念公德(영념공덕)터(기지)를 희사하시어 면청사를 세울 수 있도록 하심에 돌에 이름을 새기어 영원히 공덕을 기념합니다. 甘谷面事務所期成會(감..
감곡면 상평1리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보호수입니다.나무밑으로는 데크등을 조성하였으며 정자와 함께 마을주민들의 쉼터로 자리하고 있습니다.상평1리는 안동김씨들의 집성촌이었는데 지금은 그 빛깔이 많이 옅어졌습니다. 상평1리는 마을 앞산인 묵발림산 아래로 성들천(월정천)이 흘러 주천저수지로 북류하고 있으며 성들천을 따라 지방도 525번인 감노로가 마을을 지나간다. 마을 주위로 산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앞에 있는 산을 묵발림산이라 한다. 외부로 통하는 고개가 많다. 아랫상촌에서 생극면 차곡리 오얏골로 가는 오얏골고개, 생극면 차곡리 수레울로 가는 수레울고개, 윗상촌과 외딴터로 넘어가는 사태고개 등이 있다. 아랫상촌 주위로 산들이 많아 산자락에는 밭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상평1리는 안동김씨의 세거지이며 ..
감곡면사무소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감곡면장을 지낸 남상철의 송덕비 입니다.전면장남상철씨송덕비( 前面長南相喆氏頌德碑)라고 적혀 있으며 다른 비석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상철(南相喆, 1891년 ~ 1978년)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가톨릭 계열 인물이다.본관은 의령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하여 후에 가톨릭 성인이 된 남종삼의 손자이다. 남종삼이 처형될 때 가족들도 함께 죽었으나, 둘째 아들은 어린 나이라 목숨을 건져 대를 이었다. 남상철의 아버지가 이때 살아남은 남종삼의 아들이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며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귀국한 뒤에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의 매괴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음성 지역 유지로 활동하면서, 1921년부터 감곡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