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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76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율리에 위치한 율리저수지는 집에서 차로 이동하면 외곽도로를 이용하면 약 25분 정도 걸립니다.요즈음은 지자체마다 둘레길을 잘 조성하여 놓았기 때문에 가끔씩 아내와 둘레길 산책을 합니다. 오늘은 율리에 자리하고 있는 율리저수지를 찾았습니다.언제나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는 율리석불을 봅니다. 많은 세월을 지내는 동안 제대로 된 모습 민초들의 바램에 내어주고 지금은 많이 훼손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입상으로서 본래는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었는데 1979년 7월에 삼기저수지가 완공되어 수몰되게 되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불상의 높이는 2.1m이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寶冠)을 썼으며 얼굴과 몸체는 양감이 풍부하고, 힘이 넘쳐 보이는 당당한 모습이다...
군북면 대정리에 위치한 열부 남양홍씨의 비석입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비석에는 열부남양홍씨지비( 烈婦南陽洪氏之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부인의 열행기록이 적혀 있습니다. 열부홍씨 부인은 남양인 여대의 따님으로 단기4214년 8월6일에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에게 순종하고 형제간 우애로 칭송이 높았다. 16세에 대정리에 사는 조선초 정승을 지낸 충경공의 후손이며 옥천군수 수장의 6대손 희철의 8대손인 인문의 부인이 되었다.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부군에 공경하더니 20세에 1녀를 낳고 부군이 병들자 백약으로 정성을 다했으나 끝내 하직하고 말았다. 부인은 즉시 순절하려 하였으나 후사를 생각하여 부군의 장례를 치루고 조카 내열을 양자로 맞아 후사를 정하였다. 조상들의 도..
현도면 죽암2리 빗기내(橫川) 마을입구에 있는 돌탑입니다.이 곳에서 도로를 따라 약 2키로 정도 들어가면 횡천이라 불리우는 죽암2리 빗기내 마을입니다. 돌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막기 위해 쌓은 신앙 대상물입니다. 하지만 마을 앞의 허한 방위를 막기 위해서나 특정한 모양의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단순 비보물(裨補物)이기도 합니다. 다른 신앙 대상물에 비해 풍수적인 비보(裨補)신앙의 모습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갯마루나 사찰입구에 지나가는 길손이 마구잡이로 던져 놓은 잡석의 서낭당이나 개인이 신을 향한 구도의 마음으로 쌓은 돌탑과는 구별됩니다. 주민들의 소망과 정성이 모아진 비교적 정교한 마을신앙 대상물이기 때문입니다. 돌탑을 시멘..
옥천 지재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김옥정 선생이 후학을 교육하던 서당이라고 전한다. ‘지재(止齋)’라는 명칭은 미호 김원행(金元行, 1703∼1772)선생이 건물의 배산인 구지봉(求止峰)에서 구(求)를 빼고 지재(止齋)라고 하였으며, 현재도 현판이 남아 있다.건물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가공 주초와 덤벙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방안의 천장은 특이하게 널반자로 되어 있는데, 서적이나 판목 등을 보관하는 수납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당 입구에는 처음 건립 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연못이 남아 있다.지재는 당시 유교적 특징을 나타내어 검소하며 소박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지역적 서당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일제..
옥화서원앞에는 주일재(主一齋)가 있다. 주일재는 윤승임의 호를 딴 건물이다. 주일재 안에는 1674년(현종 15)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주일재잠(主一齋箴)」, 「옥화대명(玉華臺銘)」과 1760년(영조 36) 송시열의 5대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주일재중건기(主一齋重建記)」가 걸려 있다. 옥화서원 앞에는 윤승임의 신도비가 서 있습니다.비석에는 증가선대부장례원판결사주일재윤공승임신도비배증정부인하양허씨부배 증정부인전주이씨건묘하( 贈嘉善大夫掌隷院判決事主一齋尹公承任神道碑配贈貞夫人河陽許氏祔配 贈貞夫人全州李氏乾墓下)라고 적혀 있습니다. 장레원(掌隷院)은 조선 시대, 노비에 관한 문서와 노비에 관한 소송(訴訟)을 맡아보던 관아를 말합니다. 1467(세조 13)년에 변정원(辨定院)을 고친 것이다. 미원면 옥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