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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천면 화양구곡 정만석한시각자(靑川面 華陽九曲 鄭晩錫漢詩刻字) 본문
화양구곡 제 4곡인 금사담에 있는 암서재옆에 있는 바위에 각자된 정만석의 한시입니다. 1807년 공충도 관찰사 시절 이곳을 찾았다가 한시를 각자한 것입니다. 금사담 주위로는 많은 암각자들이 있습니다.화양구곡내에 새겨진 많은 암각자를 찾는것도 시간가는줄 모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환구건정처 (寰區乾淨處) - 천지사이에 편한 곳이
암옥양삼간 (巖屋兩三間) - 바위 집 두 세칸이구나
서수하증식 (逝水何曽息) - 흐르는 물은 어이 쉼이 있으리
고산불가반 (高山不可攀) - 높은 산도 붙잡아 둘 수 없거늘
1801년(순조 1) 교리를 거쳐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청나라에 파견되었다. 그 뒤 경상우도암행어사를 거쳐 1803년 동래부사 때 뇌물을 받고 대마도(對馬島)와의 통신서계(通信書契)를 위조한 역관을 처벌하였다.
1807년 공충도관찰사를 거쳐, 1811년평안도에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발생하자 민심 수습을 위해 관서위무사(關西慰撫使)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민심 수습을 위한 호포(戶布) 징수상의 문제와 논공행상의 불철저로 일시 파직되었다가 곧 평안감사가 되었다. 감사로 있으면서 홍경래 관련 죄인들의 문초를 담당해, 이 기록을 『관서신미록(關西辛未錄)』이라 하여 임금에게 올렸다. 이것은 그가 올린 『계첩기략(啓牒記略)』과 함께 조정에서 이용한 홍경래난의 주요한 자료였다.
1815년(순조 15) 한성부판윤 이후 호조판서를 거쳐 1819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나갔다가 다시 경직(京職)으로 돌아와 요직을 역임했고, 1829년 우의정이 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淸白吏)로 불렸다 한다. 하지만 중앙에서는 국가 경제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호조판서·선혜청당상이 되어 명성을 떨쳤으나, 번세(煩細)에 얽매여 대체(大體)에 어두웠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 전하는 저서로는 『관서신미록』이 있다.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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