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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미원리 약물내기공원에 자리한 홍석무의 사적비입니다. 홍석무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호는 만계(晩溪), 본관은 남양이다. 회덕 신탄진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조부 홍순각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부친 홍이정은 참봉을 지냈다. 홍석무는 어려서부터 담력이 출중하였고, 특히 효성이 지극했다. 17세 때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묘 곁에 묘막을 짓고 형과 함께 시묘했는데, 벽도 바르지 않고 상복도 벗지 않고, 죽으로 3년을 연명하여 슬픔을 다하였다. 또한 복을 벗은 후에는 3세 때의 부친상에 거상을 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선친을 위해 3년 상을 추상하고자 하였으나 조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평생을 죄인으로 자처하여 일생 동안 사치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짚으..
청파선생의 사적비는 미원시내 약물내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공은 1919년 12눨 23일생으로 이 고장에서 출생하였다.지역발전을 위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법원의 지방행정주사로 그 후에는 엽연초생산조합에서 일을 하였습니다.미원면 노인회장등 을 역임하였으며 그 후 창주향교 전교를 역임하는 등 지역발전과 더불어 지역의 유림활동에 지대한 공로가 있어 지역주민과 유림들의 뜻을 모아 비석을 세웠습니다.문중을 위해서는 자신의 토지 300여평을 희사하는 등 남양홍문의 사당인 남양사를 창건하는데 진심진력을 다하였다.숭조와 이웃주민들의 어려움을 위하여 전심을 다한 청파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비석입니다. 원임성균관전학청주향교전교청파남양홍공구표사적비( 原任成均館典學淸州鄕校典校靑坡南陽洪公龜杓事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증평읍 율리 삼기저수지 옆에 자리하고 있는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입니다.얼굴등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수가 없습니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입상으로서 본래는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었는데 1979년 7월에 삼기저수지가 완공되어 수몰되게 되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불상의 높이는 2.1m이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寶冠)을 썼으며 얼굴과 몸체는 양감이 풍부하고, 힘이 넘쳐 보이는 당당한 모습이다. 인상은 풍만하나 목에 삼도(三道)는 없으며,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오른손은 가슴에 얹은 모습이다. 이 수인(手印)은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고 두려움을 떨쳐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여원시무외인(如願施無畏印)이다. 보관 밑에 굵은 띠가 돌려져 있고 정면에는 둥근 장식이 있으나 띠 안의 문양은..
미원면 미원리에 있는 이 충효각은 1801년(순조 1)에 충효로 지평(持平)에 증직된 만은(晩隱) 홍주화(洪冑華)의 충효각에 1806년(순조 6)에 충효로 참판(參判)에 증 직된 그의 할아버지 만계(晩溪) 홍석무(洪錫武)와 1819년(순조 17)에 효부로 명정 된 그의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 등 3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이다. 지 금의 충효각은 1967년에 중수하고 1986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3인의 충효문 편액을 걸었다. 정려 안에는 1967년에 판각한 중수기(重修記)가 걸려 있으며, 앞에 1986년에 세운 사적비와 중수비가 있다. 홍석무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호는 만계(晩溪), 본관은 남양이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충주입니다.충주를 세가지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담배를 만드는 황색엽연초를 상징하는 노란색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상징하는 빨간색그리고 충주를 끼고 돌며 언제나 시원했던 남한강의 물색깔인 파랑색이었지요그래 그 세 색깔을 삼원색이라고 불렀지요남한강 강가는 어린시절 휼룡한 강수욕장이었고 피라미등 물고기를 많이 잡았었지요.가끔씩 한 여름이면 아버지는 리어카에 솥등을 실고 가족들이 강가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강가에 솥을 걸고 어머니는 나무밑에서 점심으로 수제비를 만들곤 하셨지요.그 수제비와 함께 꼭 들어가던 것이 강에서 잡은 올뱅이 였습니다.다슬기라는 표준어가 있지만 올뱅이라는 말로 더 친숙함을 느꼈답니다.아욱을 양껏 넣고 올뱅이를 끓인물에 된장을 풀고 대파를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