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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동 관찰사남일우불망비(丹月洞 觀察使南一祐不忘碑) 본문
관찰사남공일우영세불망비( 觀察使南公一祐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엽연초생산조합 화단옆에 있다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다시 세웠습니다.충청도 관찰사로 재임하였으므로 단양 수안보 등 여러곳에서 비석을 볼수가 있습니다.
1837년(헌종 3)∼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 뒤에 일우(一愚)로 개명. 자는 백경(伯敬). 태순(太淳)의 손자이며, 나주목사 병선(秉善)의 아들이다.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73년(고종 10) 성균관대사성, 1876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1879년에는 그해의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그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8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충주·연풍·부여·청안 등지의 관청의 부실한 재정을 일제히 정비하였고, 조세제도를 정비함으로써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충청우도에 산재한 주사읍진(舟師邑鎭)의 수토군(搜討軍)과 수영(水營)의 난후군(欄後軍)을 혁파하여 군사제도를 정비하기도 하였다.그뒤 사헌부대사헌·이조참판·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886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오랜 시일이 경과하여 점차 훼절(毁絶)되어가던조선조의 기본법전인 《대전회통》·《대명률 大明律》·《무원록(無寃錄)》 등을 개간, 인출(印出)함으로써 형정(刑政)에 공헌하였다. 그해에 공조판서에 올랐다.
승정원일기 2900책 (탈초본 133책) 고종 19년 5월 13일 무술 4/14 기사 1882년 光緖(淸/德宗) 8년
○ 備忘記, 忠淸道觀察使南一祐下直, 長弓一張, 長箭一部賜給。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4월 23일 무인 1번째기사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박제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제관(朴齊寬)을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윤종의(尹宗儀)를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으로, 홍영식(洪英植)을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으로, 남일우(南一祐)를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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