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단월동 유장혁불망비(丹月洞 劉章赫不忘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단월동 유장혁불망비(丹月洞 劉章赫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10. 13. 12:34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유장혁의 영세불망비.

원래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정문 옆의 야산 자락에 위치하였으나, 2008년 단월동 488-1번지에 충주 엽연초생산조합 건물이 신축되면서 현 위치로 옮겨놓았다. 그 후 달천동과 단월동에  흩어진 비석을 한군데 모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습니다.비좌원수의 형태로 비신은 53×16×122㎝ 크기의 대리석 비이다. 대석은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다.비제는 8×8㎝ 크기의 해서체로 ‘가선대부유장혁영세불망비(嘉善大夫劉章赫永世不忘碑)’라 음기되었으며,비제 양옆으로 2행씩 본문이 3×3㎝ 크기로 ‘누거리수세탐민정일경뢰력중구동성(屡居吏首細探民情一境賴力衆口同聲)”이라 음기되어 있다.

 

유장혁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비의 간략한 내용으로 미루어 수령으로 세심히 민정을 살피고 모든 정성을 쏟은 것에 대하여 백성들이 뜻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1845년 당시 충청감사 (忠淸監司 )였던 강시영(姜時永)이 승정원에 올린 장계에서 유장혁( 劉章赫 )의 이름을 볼수가 있습니다.

乙巳三月十一日

啓爲相考事。 節到付忠州牧使李衡遠牒呈內, 今月初四日卯時量, 守獄刑吏劉遇赫, 鎖匠奴咸金等手本內, 殺獄罪人張龍先, 自去月二十四日, 猝得身病, 連爲苦痛矣。 今月初四日寅時量, 仍爲物故是如爲有等以, 牧使率應參各人等, 馳往獄中, 依例對衆檢驗爲如乎所, 着之物段, 初木綿赤古里一, 次木綿袴一, 襪子一雙, 竝只着持, 年可六十三歲許男人, 東頭西足, 仰臥致死爲有去乙, 仵作使令李咸得乙用良, 次次解脫, 試用法物, 飜轉洗拭, 詳細檢驗, 則身長五尺六寸, 頭髮長一尺二寸。 仰面段, 遍身萎黃色柔軟, 兩眼合, 口唇合, 兩手微握, 兩脚伸直, 兩膁䏰有訊杖痕各一處, 長各二寸二分, 廣四分微堅, 合面段, 自腦後, 至兩脚跟, 萎黃色柔軟, 口中及穀道, 探試銀尖, 色不變, 實因段, 因病物故的實是齊。 推考次, 乙巳三月初四日, 戶長劉昇赫年五十, 吏房劉章赫年五十七, 刑吏權學九年二十八, 律生兼醫生李東欣年四十一, 守獄刑吏劉遇赫年三十五, 鎖匠奴咸金年三十五, 仵作使令李咸得年四十, 竝只白等, 今此殺獄罪人張龍先屍身檢驗時, 矣徒等隨參看審是乎則, 仰面段, 遍身痿黃色柔軟, 兩眼合, 口唇合, 兩手微握, 兩脚伸直, 兩膁肕有訊杖痕各一處, 長各二寸二分, 廣各四分微堅, 合面段, 自腦後, 至兩脚跟, 萎黃色柔軟, 口中及穀道, 探試銀尖, 色不變。 實因段, 因病物故的實是去乎, 相考處置敎味爲等如, 各人等招辭是置有亦。 同罪人張龍先, 因病物故的實是乎等以, 宇字號屍帳兩件成出, 一件上使, 一件官上爲乎旀, 屍體出給埋瘞緣由, 牒報爲臥乎所, 牒呈是白置有亦。 上項忠州牧殺獄罪人張龍先, 因病物故的實是白乎等以, 緣由馳啓爲白臥乎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