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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흥덕구(興德區)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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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한금섬(韓金蟾), 이소사(李召史)의 정려문.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그의 두 소실이었던 한금섬과 이소사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본래는 1595년(선조 28) 송상현만 정려되었으나, 1704년(숙종 30)에 두 소실이 정려됨에 따라 함께 모시게 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중수한 것이다. 한금섬은 본래 함흥(咸興)의 기생으로 송상현의 첩이었다. 13세에 송상현을 따라 동래(東萊)로 갔다가 임진왜란으로 동래성이 함락되고 동래부사 송상현이 순절할 때 곁에서 시중을 들다가 적에게 잡혀 3일간 항거한 끝에 순절했다. 이소사는 이양녀(李良女)라고도 하는데, 송상현의 소실로 임진왜란 때 동래..

수의동 강상촌에 있는 송상현의 신도비입니다.신도비옆에는 신도비를 세우게 된 취지문이 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렬문의 오른쪽에 1983년 3월에 세운 송상현신도비의 번역비가 있다. 번역비는 화강석으로 된 거북대좌 위에 높이 235㎝, 폭 75㎝, 두께 42㎝의 오석 비신을 세웠으며, 그 위에 앞뒤로 각각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함께 물고 있는 모습의 이수를 얹었다. 원래의 신도비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점차 아는 이가 적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13대손 송칠용(宋七鏞), 송원용(宋源鏞), 송신용(宋信鏞)과 14대손 송해운(宋海雲), 송해현(宋海玹) 등이 상의하여 단국대학교 박천규(朴天圭) 교수에게 부탁해서 국한문으로 번역하고, 14대손 송해석(宋海碩)의 글씨로 번역비를 세운 것이다. 신도비가 건립..

가로수길로 유명한 수의동(綱常村)에 위치한송명휘의 처인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이다.정려각은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41년(헌종 7)에 세운 정려각이다.돌과 시멘트를 배합하여 마련한 낮은 기단 위에 정려각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풍판을 달았다. 주춧돌은 자연석을 다듬어 낮게 기단 하부를 만들었고, 같은 돌을 귀접이한 4각 주춧돌로 상부를 삼았는데 상부의 높이와 지름은 대략 30㎝ 정도이다.충청북도기념물 151호로 지정되여 관리되고 있다.건물 안에는 정려각을 세운 경위를 적은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안에 걸린 편액에는 “孝婦 成均生員 贈童蒙敎官 朝奉大夫 宋明輝妻 贈令人 迎日鄭氏之閭 純廟丙子四月日命旌 今上辛丑三月日立(효부 성균생원..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오세환 의 처 경주김씨의 열녀각.정려기문에 의하면 오세환 의 처 경주김씨는 남편이 병으로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다가 발인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25세의 짧은 삶을 마감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1752년(영조 28) 4월에 정려를 내리고, 그 다음 해에 열녀각을 세웠다. 흥덕구 송절동에 위치하고 있다. 보성오공세환처열녀경주김씨지정려(寶城吳公世煥妻 烈女慶州金氏旌閭)라고 현판에 써있습니다. 기존의 위치하고 있던 장소등이 테크노밸리 산업단지등으로 편입되자 현재 이 곳으로 보성오씨의 납골묘를 조성하면서 정려문도 같이 이건한것으로 보입니다. 송절동은 원래 골짜기 안(속)에 절이 있어서 ‘속절’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송절’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

오송읍 오송행정복지센타내에 있는 상주인 박재한의 송공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임천상주박공재학송공비(林泉尙州朴公在學頌功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박재학의 송공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2002년입니다. 박재학은 자수성가하여 모은 돈으로 후학등을 양성하기 위하여 장학회를 설립하여 강외면 고장의 장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줌으로써 지역의 발전과 교육여건 개선등에 지대헌 공로가 있어서 강외면민 일동의 이름으로 송공비를 세웠다.

태성리는 본래 청주군 西江內 二下面의 지역으로 三國鼎立 시대에 백제가 청주 上黨山城을 쌓고 그 衛城을 恩積山에 石城을 쌓으면서 錦江(美湖천)을 따라 領土를 경계 하게 되고 哨城을 흙으로 쌓았는데 지금의 궁현에서부터 台城里 끝까지이니 토성의 尾 가 된다고하여 토성미라 부르다가 日帝때 마을 명칭을 개정할 때 태성리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三山洞, 華亨里, 궁현里, 蓼谷里, 大溪里 일부를 병합하 여 台城里로 江內面에 편입하였다. 1975년에 요곡, 행절, 진등올 1리로 하고 원태성, 삼산, 용실을 2리로 분구하였다. 강내면 태성리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내면 면장을 지낸 민영학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면장민공영학송덕비(面長閔公泳學頌德碑)라고 음기되어 있읍니다.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