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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면 법주사 금오당태전지탑(金烏堂太田之塔)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속리산면 법주사 금오당태전지탑(金烏堂太田之塔)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0. 28. 15:00

 

 

 

 

 

 

 

 

 

 

 

 

 

 

 

 

 

 

 

 

금오 대선사(金烏大禪師)

금오 태전(金烏太田, 1896∼1968) 스님은 법주사의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나아가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기까지 스님이 이룩한 업적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스님은 1896년 7월 23일 전라남도 강진에서 동래 정씨로 태어났다. 속명은 태선(太先), 호는 금오, 그리고 이름이 태전이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태어난 금오 선사는 어려서 서당교육을 받았는데 천성이 영민하고 기질이 출중하여

학동 가운데 공부가 늘 앞섰다고 합니다.

'금오집(金烏集)'에는 가형(家兄)으로부터 공부를 게을리한다는 꾸지람과 매를 맞고는 "그까짓 글공부만 해서 무엇을 하느냐"며 집을 나와

그 길로 출가를 하였다고 한다.1912년 3월 마침내 스님은 15세로 금강산 마하연사에 출가하여 도암 긍현(道庵亘玄)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안변 석왕사 등지에서 불교의 기초교육을 습득하고 1921년에는 오대산 월정사에서 화두를 들고 참선 수행하였다.

이해 8월에는 통도사에서 일봉(一峰) 율사를 계사(戒師)로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은 남달리 참선수행에 정진하였다.

그 뒤 수 년 간 통도사 보광선원과 천성사 미타암 등지에서 수행하다가 충청남도 예산 보덕사의 보월(寶月) 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 갔다.

그러나 보월 선사는 스님의 그릇됨을 보기 위해 쉽게 제자로 거두어 주지 않았다. 그러자 금오 스님은, “시방세계를 투철히 오르니 없고 없다는 것

또한 없구나. 하나하나가 모두 그러하기에 아무리 뿌리를 찾아 보아도 역시 없고 없을 뿐이네.” 라는 오도송을 올리자 그제야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건당식(建幢式)을 치루지 못한 채 보월 선사가 1924년에 입적하고 말았다.

이듬해 보월 선사의 스승인 만공(滿空) 선사에게서 건당식을 받고 전법계까지 수지하였다.

스님의 수행은 계속되었다. 10여 년 간 각지의 선방을 유력하였고, 심지어는 하심(下心)을 기르기 위해 2년씩이나 거지생활도 하였다.

1935년에는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의 조실을 지냈고, 이후 안변 석왕사, 도봉산 망월사, 지리산 칠불사, 서울 선학원 등에서 후학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스님은 항상 제자들에게, “불법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마저도 아깝지 않는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며 투철한 수행자세를 강조하였고,

스스로 그런 자세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출가자의 모범적 자세가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1954년에는 불교정화를 위한 전국비구승대회의 추진위원장이 되었다. 당시 스님은, “정화란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의 불량한 때를 씻어 버리는 것이 정화요, 몸의 일체비행을 고치는 것이 정화이다.” 라고 하여

대처승을 축출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1955년 대한불교조계종 부종정, 이듬해 서울 봉은사 주지, 1957년 구례 화엄사 주지, 그리고 1958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였다.

스님이 법주사에 주석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으로서 당시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젊은 수좌들에게 열정적으로 불도를 가르쳤다.

이듬해 1968년 음력 8월 17일 ‘무념으로써 종을 삼는다(無念爲宗).’는 말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1975년 법주사에 스님의 부도와 비를 세웠다.

세수 73세, 법랍 57년을 살다간 스님의 생애는 한국불교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스님은 “참선을 하지 않는 납자는 승려 자격이 없다.”고 할 정도로 선수행에 몰입하였다. 스님의 선풍(禪風)은 한국 정통선을 계승하였고, 다시 제자들에게 전해져 오늘날 조계종을 이끌어 가는 주역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스님의 법을 이은 상좌로는 월산, 범행, 탄성, 혜정, 월주 스님 등 한국불교 현대사의 큰획을 그으신 분들이 많이 있고, 손상좌까지 포함하면

무려 600여 명이 넘는다고 하니, 스님이 일군 한국불교의 튼튼한 뿌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꽃을 피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