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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마을표지석 (11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대촌大村과 와정瓦亭에서 한 자씩 따서 대정리라 하였다. 대촌리와 와정리가 있고, 자연마을은 대촌, 방아실, 세거리, 와정, 자가터, 거먹골이 있다. 예부터 마을이 커서 대촌大村이라 불렸다. 문화류씨 충경공파가 집성촌을 이루며 재실이 있다. 1506년 참봉 류은이 처음 들어와 살았다. 임진왜란 때 류흥수가 조헌 의병에 참전해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여 종용사에 배향되었다. 그때 그의 손자 류복은 궁내사복으로 왕을 호종했다.행정리는 대촌리이며, 자연마을은 대촌, 방아실 등이 있다. 석회석이 포함된 토질이다.주작목은 벼농사이고, 특산물로는 육질 좋은 마늘과 하우스 포도이다. - 방아실: 대촌리 동편 대청호변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지형이 디딜방아를 닮아 유래했다.- 방화정: 대촌에서 방아실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정자..
두모리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와 함께 서로 바라보는 버드나무가 오래된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나무는 수세가 좋으며 동네주민들의 쉼터와 더불어 마을버스의 종착점이기도 합니다. 괴수정 밑에 자리하고 있는 두모실 자랑비 입니다. 오석에 동민들의 마음을 담아 세웠습니다두모실 마을의 자랑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모실 자랑" 천하명산 구룡산 자락에 아늑히 자리잡고 고창산 품에 안겨 부자마을 될터라고 두사충이 손벽치며 춤추었다는 우리 마을에 하늘에 태양은 복을 내리웁고 밤하늘 저 달은 평온을 안겨주었네. 함씨,김씨,임씨,허씨 세거민 되어 서로 화합 시샘하 듯 화목을 자랑하니 이 어찌 우리의 자랑이 아니든가 부락동구 수백년된 괴수정은 조상 대대로 우리를 지켜왔고 평화 번영 안겨..
본래 영동현 서서일면 지역으로 1909년 영동군 서일면(西一面)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후곡동(後谷洞), 길동(吉洞) 및 당현동(塘峴洞) 일부를 병합하여 길현(吉峴)과 당현(塘峴)의 이름을 따서 길현리라하여 영동군 심천면에 편입하였다.
예곡리는 조선후기 『여지도서』와 1891년 『신묘장적』에 청산현 북면 예곡리藝谷里로 기록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예곡리와 외예곡리를 합쳐 예곡리라 하고 옥천군 청산면에 소속하였다. 예곡리는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예곡리禮谷里로 개명되었다가 2006년에 예곡리藝谷里로 환원되었다. 예곡리 보건진료소가 있다. 예곡리는 예실이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예실은 육예六藝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육예六藝는 예(禮-예용), 악(樂-음악), 사(射-궁술), 어(御-마술), 서(書-서예), 수(數-수학)이다.예는 기예 예藝 자와, 실은 옛 말에 ‘마을’을 뜻하므로 예실藝室이라 하였 을 것이다.상예곡에는 일찍이 광산김씨 중시조 김광로가 송시열 이종사촌이었기 때문에, 우암의 주자학적 예학과 ..
2007년에 사당인 용강사옆에 자리한 파주염씨세거지비와 후암염노훈의 송덕비와 함께 용호리에 세운 용호리 마을자랑비입니다.전면에는 용호리(龍湖里)라고 각자 하였으며 후면에는 용호리 마을의 내력을 상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용호리 마을 내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주염씨坡州廉氏 600년의 세거 마을 안내면 용호리는 안말, 쑥말, 새말에 방개까지 100여 호의 가구가 들어서 있던 당당하고 평화롭던 동네이다. 갈평고담葛坪古潭이란 영험한 늪이 있어 가뭄이 심할 때면 옥천군수가 나와 정성으로 기우제를 올리던 당일로 단비를 내려주었다. 수려한 산세 사이로 맑게 흐르는 금강이 서대산에서 흘러오는 소내(서화천)과 만나는 곳에 삼각주 섬이 생기면서 절경을 이루고 한편으론 천연의 요새로서 6·25를 비롯, 온갖 외침들을 막..
"선비를 꿈꾸는 붓마을 작다리" 라는 글이 새겨진 마을유래비와 붓을 형상화한 조형물입니다. 조형물의 건립년도는 2000년 12월 입니다. 화성4리는 작다리 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다.작다리라는 ‘상작’은 도안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900m의 거리에 있다. ‘상작’은 화성4리 ‘하작’과 함께 ‘작다리’로 불리는데, ‘새말장둑’이 경계이다. 즉 ‘새말장둑’ 북쪽은 ‘상작’이고, 남쪽은 ‘하작’이다. 『호구총수(戶口總數)』(정조 13년, 1789)에도 ‘상작달리(上爵達里)’와 ‘상작달하리(上爵達下里)’가 보인다. 그러나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名稱一覽)』(1912)에는 ‘상작(上作)’과 ‘하작(下作)’으로 바뀌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上作/윗작다리’로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