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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남이면 산막리 마을회관 앞에 자리하고 있는 김기수,이주희 공적비 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김기수,이주희공적비(金基壽,李周熙功績碑)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공적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동민의 숙원사업이었던 갈월리에서 산막리까지 진입로 공사추진에 김기수,이주희 두분이 불원가사(不願家事)하고 본 부락 발전을 위하여 헌신봉사 하셨으며 그 공로가 지대하여 이 공적비를 세웁니다.1996년 1월 산막리동민일동이 세웁니다. 산막리는 본래 청주군 남차이면 지역으로써 산막을 짓고 살았으므로 산막골 또는 산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복용리를 병합하여 산막리라 해서 남이면에 편입되었다. 전원주택등이 많이 개발되었으며 한적하고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입니다..

용암동 보살사 오르는 길을 가다보면 보살사 거의 다다라 왼쪽으로 붉은 함석지붕집이 보입니다.보살사 부도전은 함석집 뒷쪽으로 자리한 청주한씨묘역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잡목등이 우거져서 접근하기가 좋치 않았지만 지금은 묘역을 조성하면서 부도전도 깔끔하게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석종형 부도 3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암동 보살사 부도(龍岩洞 菩薩寺 浮屠) 용암동 보살사 부도(龍岩洞 菩薩寺 浮屠)취봉당탑(就峯堂塔)옹정8년 경술5월제자아(雍正8年 庚戌5月弟子芽)옹정8년이면 1730년으로 경술년이며 영조6년이다.같이 있는 자우당탑이 서기 1718년이므로 취봉당탑과는 약 12년의 간격이 있다.king6113.tistory.com 용암동 보살사부도전(龍岩洞 菩薩寺浮屠殿) 용암동 보살사..

용암동 보살사 명부전안에 있는 십시왕과 지장보살 및 인왕상 사진입니다. 용암동 낙가산 보살사(龍岩洞 洛迦山 菩薩寺) 용암동 낙가산 보살사(龍岩洞 洛迦山 菩薩寺)동부우회도로를 달리다 보면 요즈음 한창 입주가 시작된 동남지구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보살사라는 입간판을 보고 달리다 보면 낙가산 밑에 보살사에 이르게 됩니다 보살사가 위치한 낙가king6113.tistory.com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시립하고 있습니다. 도산지옥 - 온산에 뾰족뾰족한 날카로운 칼들이 빈틈없이 꽂혀있는 능선을 무기를 든 지옥의 옥졸들이 죄인을 맨발로 끌고 간다. 이 죄인은 이 칼의 능선을 몇번을 지나가야 할지 고통스럽기만 하다. 칼에 심어놓은 험한 산에서 죄인들이 칼에 찔리어 고통을 당하게 하..

화원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 지역으로 북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운용리와 대덕리, 서는 용곡리, 북은 괴산군 증평읍 율리와 접하고 있음. 조선 영조 후반(1750-1776) 삼흥리와 새로 생긴 신왕리가 있었으나 헌종대(1845년경) 신왕리로 통합되었고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는 신왕리, 삼흥리, 화원리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화원리라 하여 미원면에 편입되었음. 이 소류지의 명칭은 삼흥소류지입니다.삼흥리는 화원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세번 일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삼흥소류지는 산책길과 함께 데크도 만들어 놓았고 연이 자생하며 붓꽃과 찔레꽃등 꽃들이 만발입니다. 작은 소류지로 고기들의 입질이 있는지 세월을 낚는 낙시꾼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북이면 선암리에 위치한 초계변씨묘원입니다.나즈막한 동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석위에 초계변씨묘원(草溪卞氏墓苑)이라고 적혀 있으며 후손들에 의하여 묘원은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변경복,변충남,변경수등의 묘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초계 변씨는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변정실(卞庭實)로 팔계군(八溪君=草溪)에 봉해졌음으로 본관을 초계로 하였다. 중시조는 조선초 직제학을 지낸 변효문(卞孝文)이고, 입향조는 13세손 변충남(卞忠男)으로 장예원 판결사를 지내고, 1570년 경 충 남 직산에서 내수읍 비홍리로 옮겨와 정착하면서 이 일대가 세거지가 되었다. 변경복은 조선 전기 청주지역의 효자·학자입니다.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중신(仲申)이며, 호는 백음(栢陰)이다. 청원군 내수읍 비상..

임성순은 공직에 투신하여 북이면 재무게,서무계 주임등을 거쳐 부면장을 역임하고 청백한 공무원으로 면민들의 선망을 받아 1960년에 민선면장(1960.12.27~1961.06.07)으로 피선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5.16혁명으로 공직을 사퇴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지역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하여 수리안전답을 조성하고 정부지원을 받아 불당골에 소류지를 신설하였으며 동리에 전기시설을 할수 있는 시설융자등을 얻었다.1978년에는 대청호조절지 위치로 동리가 수몰될 위치로 편입되어 많은 동네 주민들이 불안해 하는 가운데 선생은 각계에 호소하여 제외되기도 하였다. 1980년에 발생한 여름장마 폭우로 인하여 마을의 도로와 마을회관이 유실되자 이듬 해 공의 노력으로 석축으로 제방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