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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 (160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가덕면 한계리 노계마을 앞 도로변에 있는 한계리 석조비로불의 모습을 야간에 조명을 이용하여 담아 보았습니다.낮에는 자세히 볼수 없는 두광과 광배의 화염무늬등과 옷자락의 모습등을 자세히 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덕면 한계리 노계마을 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한계리 비로불을 야간에 한번 담아 보았습니다.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 광배와 옷주름등 많은것들을 새로 잘 볼수 있었습니다. 한계리 노계 마을의 절터에 있는 석불로서 현재는 마을 앞 정자 나무 옆에 놓여 있는데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마멸이 심하고 형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불상은 판석형 화강암의 주형광배(舟形光背)와 대좌(臺座)를 함께 조각하였는데 부조(浮彫)가 높지 않아 평면불처럼 보인다. 광배의 윗부분과 불두부는 마멸이 심하여 원상을 알 수가 없는데 불상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안면은 인위적인 손상을 많이 입어 확인이 잘 안되나, 정면을 직시(直視)한 듯한데 눈과 코는 깊이 패여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고 목에는 삼도(..
낭랑한 목탁소리가 낙가산에 울려퍼진다.수능일에 맞춰 기도하는 신도들과 스님의 염불소리가 보살사 경내를 낮게 흐른다. 용암동 낙가산 보살사(龍岩洞 洛迦山 菩薩寺) 용암동 낙가산 보살사(龍岩洞 洛迦山 菩薩寺)동부우회도로를 달리다 보면 요즈음 한창 입주가 시작된 동남지구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보살사라는 입간판을 보고 달리다 보면 낙가산 밑에 보살사에 이르게 됩니다 보살사가 위치한 낙가king6113.tistory.com 부슬거리며 내리는 가는 빗줄기가 어깨위로 내려 앉는다.그동안 발견되어 보살사 한쪽에 있던 보살사중수비가 제 자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살사를 찾았습니다.비록비두의 한쪽과 비신이 동강이 나있지만 나름 위엄있는 중수비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용암동 보살사 보살사중수비(龍巖洞 菩薩寺..
내수읍 우산리 마을회관앞에 있는 절효부 기적비입니다.절효부 초계변씨와 효부박봉임의 기적비입니다.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초계변씨(1877~1939)는 평강인 전재우에게 시집와 부도를 지키며 길쌈으로 가업을 삼았다.또한 시부모를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공경으로서 받들었다. 시아버지가 병을 얻어 자리를 보존하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약을 달여서 올렸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의로서 삼년상을 모셨다. 그 후 시어머니가 병이 들어 5년간을 머리를 빗기며 의복과 이불을 빨아 입히고 덮어 주었다. 상을 당하자 시아버지 때와 같게 하였다.불행이 겹쳐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오랫동안 병석에 눕자 밤낮으로 옆에서 수발을 들었으며 밤이면 북두칠성에게 기도하고 아침이면 초정약수를 길어다 미음을 끓여 간호하였다. 남편이..
미원면 약물내기 공원 비석군에 있는 해주인 오윤환의 송덕비입니다.수산오윤환선생송덕비( 壽山吳允煥先生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좌,우 후면에는 수산선생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번에 약물내기 공원이 새로 단장을 하며 추가로 제작된 비석입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공을 나는 백학처럼 오직 청렴과 정직을 삶의 신조로 삼고 한평생 고고하게 살다가신 마지막 조선선비가 있으니 그는 수산 오윤환 선생님이시다.선생은 해주오씨 시조 오인유공의 26세손이요 증시조 진천현감 오윤성공의 12세 손으로 1929년 1월 13일 청주시 미원면 수산리에서 오형근공과 민남산여사 사이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서 부인 노병일 여사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다.선생은 어려서 부터 문재(文才)가 탁월하여 ..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충은 나라의 표준이요.효는 모든행동의 근본이다.조약손(祖若孫)두분은 충효를 겸전하고 손부 또한 효성지극하여 이에 감동한 임금님은 각기 증직과 아울러 정려의 전을 내렸으니 바로 남양홍씨충효각이다.만계 홍석무선생(1611~1667)은 세살때 아버님을 여의고 아홉살때 모부인 병환에 필요한 생선을 구하러 금강탁류를 바라보며 굽어보며 울고 있으니 갑자기 큰 물고기가 튀여올라오는 이적이 일어났다. 이는 실로 지성이 감천하여 생기는 일이더라.십칠세 모부인 장례에는 피눈물로 초종의 예를 다했고 삼십세에 청하현감으로 부임할제 백씨(伯氏)앞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제 비록 차자이나 부모님 신주라도 모시게 해주시면 궁천의 한을 만의 하나라도 풀까 하옵니다. 이에 동감한 백씨 또한 눈물로 이를 허했다.동헌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