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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 (145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삼효각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飛中里)에 있는 효자각으로 안정나씨(安定羅氏)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지정되어 있다. 나운걸(羅云傑)과 그의 아들 나빈(羅濱), 나린(羅潾)의 효성을 기리기 위한 효자각으로 1638년(인조 16)에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72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는 3인의 정문 편액을 걸었다. 밖에는 ‘삼효문(三孝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나사종의 아들 나운걸(羅云傑)[1456~1495]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함을 한탄하여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허종(許琮)의 여진 정벌에 백의종군하고 올적합을 죽이지 못함에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삼년상..

내수읍 비중리에 있는 안정나씨의 사당인 홍양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안정나씨삼세충효비입니다.옆에는 충효정문도 자리하고 있습니다.안정나씨와 관련된 인물들의 비석과 함께 사당인 홍양사도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24. 안정 나씨 - 충청타임즈 (cctimes.kr) 24. 안정 나씨 - 충청타임즈 충·효·덕 갖춘 조선시대 명문가시조 나천서, 고려 공민왕때 문하시중 지내1600년쯤 나사종 청원군 비홍리에 터잡아청원군 북일면에는 기러기가 나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하여 '비홍리'로 불리는 www.cctimes.kr

청주에서 충주로 가는 국도를 달리다 보면 내수읍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이씨사당입니다. 태평재는 2001년 경주이씨 상서공파 후손들이 도원1리 아랫말에 건립한 사당입니다. 매년 음력 10월 11일에 향사를 합니다. 태평재는 감찰공 이몽직을 모신 사당으로 마을 이름인 태평리에 기대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몽직(李夢稷)은 조선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경주이며 상서공파 파조 이과의 7대손 입니다. 문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 행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도원리 아랫말에 낙향하여 현재 16대손까지 세거하고 있습니다. 배위는 숙인 평양조씨이며 아들인 이천복은 행훈련원첨정으로 어모장군을 지냈으며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과 육촌지간입니다. 배위는 숙인 현풍곽씨와 밀양박씨이다.

내수읍 형동리에 있는 절부창녕성씨의 기적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절부창녕성씨기적비(節婦昌寧成氏紀蹟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후면에는 창녕성씨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 절부 창녕성씨의 효열비로 1976년 형동리에 세웠다.비문은 박윤섭(朴允燮)이 짓고 썼다.창녕성씨는 16세에 경주인(慶州人)이탁우(李濯雨)에게 시집와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부도(婦道)로서 내조하였다.창녕성씨는 불행이도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조카를 양자로 삼았으니 그 사랑하고 또한 가르침이 자기소생 못지 않았다.그러나 엎친데 덮친격으로 불행이도 이 아들마저 일찌기 세상을 떠났으나 다행이도 슬하에 3명의 손자가 있었다.부인은 이 세손자를 잘키워 그 정절(貞節)과 부덕(婦德)이 인근마을에 널리 알려졌다.이에 유림의 모임인 청주향교(淸州..

내수읍 비상리에 위치하고 있는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초게인 변동흡의 유허비입니다.

남이면 문동리 동화사 대적광전앞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입니다. 삼층석탑은 높이가 133cm에 불과하나, 고려 초의 석탑으로 절의 역사를 추정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3층 옥개석과 기단부 갑석만 남아 있으며 기단 갑석은 1장의 석재로 되어 있고, 각층의 옥개석은 낙수면이 완만합니다. 언제나 보아도 온전한 모습 갖추고 있지 못해도 참 이쁘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