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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 (83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눈 내린 날 중앙탑면 충주박물관 앞에 남한강변에 자리한 탑평리 칠층석탑을 찾았습니다.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언제나 보아도 웅장하고 참 보기 좋은 탑입니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 디지털충주문화대전[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개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변에 인접하여 세워졌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높은 토단을chungju.grandculture.net 「중앙탑 전설」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중앙탑 전설」 - 디지털충주문화대전[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서 중앙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충주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충주 탑평리 칠층..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유열우의 불망비입니다.유열우는 풍산농원을 경영하면서 원호암 노인회관을 지을 때 회관토지를 희사하여 원호암 동민들이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7월 10일에 노인회관에 영세불망비를 세웠습니다. 비석에는 풍산농원유열우회장영세불망비( 豊山農園柳烈佑會長永世不忘碑 )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그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참 가슴이 아린(?)곳이다어린시절 소풍을 간다하면 탄금대나 호암지 두곳중 한군데였으니탄금대라는 지명과 장소는 어린나의 가슴속에 참 이쁘게 각인되여 있었다소풍가는날이면 옆으로 비껴서 프라스틱 물통을 차고호주머니속에서 달랑거리며 소리내는 십원짜리 동전 몇개에 행복이 있었다점심시간 엄마가 싸오신 김밥아닌 맨밥을 먹으면서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호주머니속에 십원짜리 몇깨는 방개를 이용한 뽑기나 아니면 발굴려 만드는 솜사탕에 빼앗기고소풍이 끝나고 돌아올때는 보물찾기에서 얻은 연필 몇자루가 손에 쥐여 있었다 지금은 참 많이 바뀌였다먼지 풀풀나리던 신작로를 따라 걷던 소풍길은예쁘게 잘 단장이 되여 있고연꽃이 참이뻤던 옷갓도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과 운동장으로 바뀌였고현대화된 탄금대에는 많은 조형물들과 더불어충..
비 내리는 미륵사지를 찾아 보았습니다.미륵부처의 점안식 행사로 바쁜데 비가 내리네요.다시 태어나실 미륵부처님 모습을 몇 장 담아 보았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에는 수주리, 월은리, 문박리, 팔봉리가 있었다. 이 중 문박과 수주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문주리 (文周里)라는 명칭이 처음 만들어졌다. 문주리에 대한 기록은 1760년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나온다. 당시 유등면은 주음성리, 산정리, 팔봉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팔봉리가 현재의 문주리이다.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현재 문주리의 행정리를 이루는 팔봉, 수주, 월은이 나온다. 1912년에 나온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보면 팔봉, 수주, 문박, 월은이 나온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이들 네 개 마을이 합쳐져 문주리가 처음 생겨났다. 그리고 유등면이 이안면과 합쳐지면서 문주리가 이류면[현 대소원면]에..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입니다. 충주시 대소원면 남쪽에 위치한 매현리의 팔송산 아래 장성백이마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성백이마을은 매산과 수현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습니다. 강음인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오랑캐에게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1640년(인조 18) 정려가 내려졌고, 1701년(숙종 27)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하다 1954년 강음송씨 종중에서 열녀문을 건립하였다. 1954년 건립 이후 시멘트 사각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