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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남원(南原) (5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용담대화상탑 龍潭大和尙塔 탑신과 보주가 일석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전에서 되돌아 나와 논길을 건너 조계암지 부도전으로 향하는 부도 순례길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으나 현재는 편안하게 답사할 수 있다. 용담조관 龍潭 慥冠禪師 ...출처/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1700(숙종 26)∼1762(영조 38). 조선 후기의 승려.편양문파(鞭羊門派)의 승려. 전라북도 남원 출신. 성은 김씨(金氏). 자는 무회(無懷), 호는 용담(龍潭). 어머니는 서씨(徐氏)이다. 용이 승천하는 태몽을 꾸고 낳았으며, 생일은 사월초파일이다.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지내면서 인생의 무상을 느껴 출가를 결심하였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1718년(숙종 44)감로사(甘露寺)상흡(尙洽)에게 나아가..
남원 실상사 조게암터에 있는 부도입니다. 실상사에서 500여미터 올라가면 조계암터가 죄측 산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소재한 실상사 편운화상 승탑은 실상사에서 남쪽으로 약300m 떨어진 조계암터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편운화상은 실상사 창건조인 홍척국사의 제자로 수철화상과 동문 법형제라 할 수 있으며, 성주 안봉사를 창건한 인물이다. 전북 유형문화재 24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편운화상 입적직후 조성된 승탑은 지대석과 하대석, 중석, 탑신 및 옥개석 등이 모두 원형으로 넓고 둥근 원형의 지대석 위에 1단의 각을 이룬 받침대를 두고 그 위에 운문의 하대석과 3단 층단의 괴임대 및 원형의 중석이 한 돌로 이어지고 있다. 탑신 또한 특이하게도 원형이면서 위는 크고 아..
남원 실상사 백장암 대웅전 앞에 자리한 부도입니다.조선조의 석종형부도와 함께 각종 부도자재등으로 혼합된 부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소재한 실상사 편운화상 승탑은 실상사에서 남쪽으로 약300m 떨어진 조계암터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편운화상은 실상사 창건조인 홍척국사의 제자로 수철화상과 동문 법형제라 할 수 있으며, 성주 안봉사를 창건한 인물이다. 전북 유형문화재 24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편운화상 입적직후 조성된 승탑은 지대석과 하대석, 중석, 탑신 및 옥개석 등이 모두 원형으로 넓고 둥근 원형의 지대석 위에 1단의 각을 이룬 받침대를 두고 그 위에 운문의 하대석과 3단 층단의 괴임대 및 원형의 중석이 한 돌로 이어지고 있다. 탑신 또한 특이하게도 원형이면서 위는 크고 아래쪽은 작은 상후하박형이다. 탑신 중앙에는 희미한 두 줄의 띠줄이 음각되었으며 탑신의 측면에는 글자(자경 4㎝)가 새겨..
보물 제3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홍척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탑이다. 홍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시호는 ‘증각’이다. 탑은 기단(基壇)은 팔각형의 석재를 여러층 쌓은 뒤 연꽃이 피어있는 모양의 돌을 올렸다. 각 면의 조각들은 닳아 없어져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고 윗받침돌의 연꽃잎만이 뚜렷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는데 낮은 편이다. 몸돌은 기둥 모양을 새겨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아치형의 문(門)을 새겼다. 그곳에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목조건축의 처마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