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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남원(南原) (5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실상사에 있는 증각대사의 탑비이다.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실상사 극락전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 하지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조각을 보여주는데,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명칭을 새겨 두었다.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신라 무열왕릉비와 같이 한국 석비의 고전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사의 묘탑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은 탑비의 뒤편 언덕..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백장암 삼층석탑에 빠져 백장암석등 사진을 제대로 담질 못했다. 세상에나 아무리 찾아도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지?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의 서쪽 분지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가 선종9산 중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하였다. 절 안의 백장암 남쪽 밑으로 울타리를 마련하여 몇 점의 유물을 보호하고 있는데, 석등은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과 함께 있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밑에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는데, 이 석등은 받침의 밑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이다. 받침은 가운데에 8각의 기둥을 두고, 아래와 윗받침돌에는 한 겹으로 된 8장의 연꽃잎을 대칭..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가기로 약속한 날을 한주 미뤘던 길이라 그냥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리 염려한것 보다는 비는 안오고 되려 백장암을 찾았을 때는 맑은하늘을 보여 주었습니다. 백장암 오르는길도 잘 포장되어있구 주차장도 갖추었고 참 좋았습니다. 오롯히 같이 간 일행과 여유있게 백장암을 둘러 볼수있어 참 좋았습니다.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백장암이 나타나는데,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로, 그 아래 경작지에 이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
평일인데다 코로나로 인해서인지 실상사 들어가는 매표소에 인적이 없습니다. 은근 기분이 좋음은 아직도 속물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남원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석장승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 1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돌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막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만수천의 해탈교를 건너기 전 마을쪽에 있는 돌장승이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한기는 제짝이 아닌 듯 넘어져 있습니다.모양새 등으로 보아 후대에 후보하였다가 방치되고 있는 듯 합니다. 해탈교를 건너자 마자 길 좌우에 2기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유명한 철불이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지방의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 역시 한 예로서 당시의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물 4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고, 정수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다. 귀는 그런대로 긴 편이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겨우 표현되고 있다. 좁아진 이마, 초생달 모양의 바로 뜬 눈, 다문 입 등의 근엄한 묘사는 이전의 활기차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깨선이 부드럽고 가슴도 볼륨있게 처리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