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
| 6 | 7 | 8 | 9 | 10 | 11 | 12 |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 충북의 문화재
- 충북의 정려문
- 곡산연씨
- 청풍문화재단지
- 공산성 선정비
- 외사리 당간지주
- 문경새재
- 효자각
- 공주박물관
- 보성오씨
- 한독의약박물관
- 경주김씨
- 티스토리챌린지
- 화양구곡
- 청주박물관
- 충주박물관
- 오블완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사인암
- 밀양박씨
- 상당산성
- 문의문화재단지
- 효자문
- 단지주혈
- 법주사
- 국립청주박물관
- 부도
- 각연사
- 충북나그네
- 부여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전체 글 (826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197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들어진 장명등(長明燈: 능묘 앞에 설치한 석등)으로서, 고려시대에 유행한 전형적인 방형등(方形燈)의 일종이다.청룡사는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시대 초기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사찰로서 오량리 뒷산인 청룡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청룡사의 옛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고 다만 절터 북쪽 골짜기에 석등 지대석과 함께 보각국사정혜원융탑과 탑비(塔碑)만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이 석등은 본래 보각국사비와 정혜원융탑앞에 배례석과 함께 부도를 장엄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나 최근 대웅전 앞으로 이건하여 원래의 위치에는 현재 지대석만 남아 있다.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사자석등(蘇台面 五良里 靑龍寺址獅子石燈)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계산 중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비입니다.1692년(숙종 18)에 청룡사 중창 및 경영 등에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는 데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석이다.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과 품목 및 수량을 적고 있어 당시 사찰의 경영 상태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며, 비문에는 2-3차례 추가로 기록한 부분도 있다. 충주 청룡사 위전비는 1978년 11월에 보수되었다.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 위전비(蘇台面 五良里 靑龍寺位田碑)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 위전비(蘇台面 五良里 靑龍寺位田碑)몇번이고 찾은 청룡사지.들어가는 입구의 위전비와 오랜시간을 같이 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계산 중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비입니다.1692년(숙종 18)에 청룡사 중창 ..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룔사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운당 사리탑 孤雲堂舍利塔 입니다.전형적인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입니다.석종형 부도는 크게 대석부와 석종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평면 사각형의 판석형 석재를 마련하였으며,그 위에 높고 낮은 2단으로 형성된 대석을 놓아 석종을 받치도록 했다. 대석 상부는 1단의 받침대를 마련하였고,상면에는 원형의 낮은 홈을 시공하여 석종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했다. 석종은 평면 원형으로 상하부의 지름이 거의 동일하다. 석종 상부에는 1단의 연주문대를 장식하고 그 위에 원형 보주받침대를 마련하였다.보주받침대 위에는 낮은 원형 받침대를 마련하여 보주를 받치도록 했다.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석종형부도(蘇台面 五良里靑龍寺址石鐘形浮屠) 소태면 오량리 청룡사지석종형부도(蘇台面 五良里..
현도면 노산리에 있는 청석교 유지비입니다.구비와 신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그 옆으로는 창석교의 덮개돌이 있습니다. 유지비에 적힌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이 곳에는 옛날 동서촌(東西村)의 경계를 이루는 내가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길목이어서 가로 4척, 세로 5척반되는 푸른 자연석 돌다리가 놓여 청석교(靑石橋)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상의재 유사인(尙義齋 柳思仁)이 이 다리에서 왜적을 무찔렀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해에 폭우로 다리는 무너지고 돌도 묻혀 오다가 1948년에 내린 폭우로 발견되어 옛날 다리 자리에 놓았다.실측 결과 가로 150cm, 세로 40∼110cm이다. 현도면 노산리 청석교유지비(賢都面 魯山里 靑石橋遺址碑) 현도면 노산리..
조선 후기 지도 중 하나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충주’ 부분을 보면 충주(忠州) 의 오른쪽 상단에 ‘連源’ 글자와 가운데 작대기가 그려진 노란색의 동그라미를 찾을 수 있다.《 대동여지도》의 범례를 살펴보면 가운데 작대기가 그려진 동그라미는 역참(驛站)을 뜻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14개 역을 관할하였다고 알려진 ‘연원역(連原驛)’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연원역은 어떤 곳이었기에 대동여지도에서까지 그 위상을 뽐내고 있을까? 연원역은 고려시대 당시 행정구역 상 평구도(平丘道)에 속한 역원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 들어와 그 위상이 높아졌다. 충청도에 속한 연원도(連原道)의 중심역이 되어 단월(丹月), 용안(龍安), 안부(安富), 가흥(嘉興), 감원(坎原), 인산(仁山) 등 6개 역을 관할하게 된 것..
남창마을유래비유유히 흐르는 역사의 강 달래강 상류와 수많은 실개천이 음성천을 살찌워 풍요로움을 잉태한 달개들을 끼고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자리잡은 우리 마을은 조선조에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남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남창(南倉)이라 하였다. 조선조 후기 충원현지(忠原縣誌)의 기록에 의하면 세곡(稅穀)을 쌓아 보관하던 창고가 네곳이 있었는데 방향별로 이름 지어진 동창, 서창, 남창, 북창중에 우리 마을이 바로 남창으로 충주에서 남쪽으로 30리에 위치하고 있고 당시 창고의 크기는 57간 이었으며 70호에 인구 425명이 살았다고 전한다. 남한강의 편리한 뱃길을 이용 이곳에 모아둔 세곡을 한양으로 실어나르며 부르던 선조들의 뱃노래가 아득히 들려오는 우리 마을 남창, 이토록 유구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