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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1리 마을 뒷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부인 청주곽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독립투사일석김태희선생묘( 獨立鬪士一石金泰熙先生墓)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김태희선생의 약력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주도한 일석(一石) 김태희(金泰熙, 1877~1936)의 묘소이다. 그는 청주시 탑동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웠고, 19세 무렵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憫老雅, F.S.Miller, 1866 ~ 1937)를 찾아가 기독교와 서구사상을 접하였다. 1904년 방흥근(方興根), 김원배(金元培) 등 동지들과 광남학교(廣南學校), 후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여..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회관 화단에 있는 강릉인 김남일의 공적비입니다.2005년에 세워졌으며 마을회관 건축시 마을발전과 주민들을 위하여 자신의 토지를 희사한 김남일의 공적을 잊지않기 위하여 마을주민들의 이름으로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강릉김공남일공적비 라고 한글로 오석에 새겨 놓았습니다.

조선 전기 효자 양수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효자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정 출신인 양수척이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와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고 늙은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러눕게 되자 고려장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청주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효자로 이름난 경대유(慶大有)[경연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삼형제를 불러 꾸짖자 양수척 3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이후 노모에게 효행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모친이 중병으로 눕게 되자 청주성으로 들어가 한약을 지어 돌아오는 중에 홍수가 나서 월운천을 건너지 못하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천의 물이 갈라져 건너게 되었으며 약을 달여 모친의 병구..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자리하고 있는 모암공 강릉인 김덕숭의 신도비입니다. 한쪽으로는 예전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번에 후손들에 의해서 새로운 신도비를 만들었습니다.옆에는 신도비를 만들며 물질적으로 헌신한 종중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오석도 일기 세워져 있습니다. 문백면 평산리 김덕숭묘지(文白面 平山里 金德崇墓地) 문백면 평산리 김덕숭묘지(文白面 平山里 金德崇墓地)김덕숭의 효행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효행으로 1448년(세종 30) 명정되었고, 1633년(인조 11)에 이월면 사곡리 사지 마을에 효자문이 세워졌다. 김덕숭은 부모를 공양하는데 정성을 다king6113.tistory.com 이월면 사곡리 김덕숭효자문(梨月面 沙谷里 金德崇孝子門) 이월면 사곡리 김덕숭효자문(梨月面 沙..

문백면 평산리에 자리한 김귀성의 묘 밑에 있는 김귀성의 신도비입니다.김귀성은 강릉인 출천지효자인 김덕숭의 장자로 김덕숭의 묘지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신도비 전면에는 통정대부참의행통훈대부서부령강릉김공귀성지묘( 通政大夫參議行通訓大夫西部令江陵金公貴誠之墓)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면에는 김귀성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바랑골[靑龍里] 바랑골은 청원군 가덕면 소재지에서 동남 방향 약 4㎞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 마을이다. 고려 선종(宣宗) 때, 황룡사 주지 혜운(慧雲)이 금강산을 지나 용인 부근 문룡암(文 龍庵)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문살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운이 놀라 눈을 뜨니 경주 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에 점을 치니, 황룡사가 불에 타고 있는 징조였다. 혜운은 동이에 물을 퍼 주문을 외며 남쪽 하늘을 향해 힘껏 끼얹었 다. 그러자 붉게 물든 하늘이 점차 어둠으로 변해갔다. 혜운의 도술로 황룡사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이어 혜운이 충청도 땅에 이르러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그 날 혜운의 꿈에 석가가 현몽하여, “바로 지금 그 자리가 부처님의 뜻 을 전하는데 적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