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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6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 석조 보살좌상. 성불사 석불좌상은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의 성불사에 있던 불상으로 현재 충주박물관 야외전시실로 이전, 전시되고 있다. 불정면은 행정구역상 괴산군에 속하지만 옛 충주에 속했던 지역이다. 높이 98㎝인 성불사 석불좌상은 전면에 덧칠을 하고 손목 이하 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원래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다. 머리는 큰 편으로 원통형 보관을 썼으며 이목구비는 마멸이 심하여 어렴풋이 보일 뿐이지만, 코는 작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다. 어깨는 당당하고 목에 장신구를 표현하고 있다. 법의는 편단우견으로 도식화된 평행 사선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등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이양호(李亮浩)[1805~1823]의 부인 남원윤씨(南原尹氏)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각.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의 효자 이양호의 부인인 남원윤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1년(철종 2)에 세운 정려각이다. 청주시내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보은 방향으로 가다 지북교차로에서 좌측의 목련공원길로 약 2㎞ 가량 가면 오른쪽에 경주이씨 국당공파 집성촌인 백운동 마을이 있는데, 마을 입구 왼쪽의 동구나무 옆에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약 70㎝ 가량의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모로단청을 하였다. 주춧돌의 하단부는 자연석을 사각으로 다듬었고 윗부분은 팔각 고주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주춧돌..

문바위에 대한 유래. 고려시대에 이곳에 문바우(바위)가 있어 문바우고개라 불리기 시작한 이 고개는 부근에 목화밭에서 목화따던 처녀를 스님이 데리고 문바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인가문(人家門)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으며 이 구렁을 인가문골이라고도 했다. 서쪽에 절이 있어 많은 스님이 왕래하였으며 부근에 절에 대한 전설이 많다. 서기 1612년(광해 4년) 해평윤공 (휘 성임)께서 광문병과에 합격한 후 한림삼사를 역임한 뒤 보덕공을 제수받고 낙향 중 인가문 고개를 넘다 목이 말라 사경을 헤메던중 마침 조그마한 샘물이 있어 기갈을 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여 그 후 이 고개를 윤갈미(尹渴迷) 또는 윤갈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문바위는 서기 1970년 도로공사로 매몰되었던 것을 2000년 초에 동민이 합심..

진천향교 오르는길에 우측에 있는 새로 신설한 하마비입니다. 진천향교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입니다.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는 강학 장소인 동시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사당인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 그리고 강당인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천향교(鎭川鄕校)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향교골에 있으며, 진천읍 동남쪽 급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진천향교의 문인 풍화루입니다. 조선 태조 때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충북향유회집(忠北鄕儒會集)』에는 고려 충숙왕 때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교육기관이 조선 초기에 재정비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1804..

신도 1리는 어룡과 통미로 구분되어진다. 마을입구에는 지철호공덕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어룡(漁龍)은 원래는 비렁이 마을이라고 하였음. 어룡소류지가 생긴후부터 제때에 모내기르 하고 소류지엔 고기가 떼지어 살았다하여 어룡이라 이름함.통미(桶山)는 어룡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외딴 산이므로 독뫼라고 불리던 것이 와전되어 통미라고 부른다고 함.

왕자사부(王子師傅)는 조선시대 왕자의 교육을 맡았던 종9품 관직이다.권설직(權設職)으로, 1785년(정조 9) 『대전통편(大典通編)』에 명문화됨으로써 임시로 증치된 관직이다. 품계는 종9품으로 사과 이하의 체아록(遞兒祿)을 받았다. 대군사부(大君師傅)·왕손교부(王孫敎傅)·내시교관(內侍敎官) 등의 권설직은 재직기간 900일이 지나면 6품관으로 승급되었다. 괴산군 청천에 있는 우암선생의 묘소를 찾았다가 우암선생 묘밑에 있는 다른묘소를 보게되었는데 근간에 세운비석이 있는 묘소입니다. 문인석과 망주석을 갖추었으며 근간에 세운 비석에는 송자현손왕자사부부군(宋子玄孫 王子師傅府君)이라고 각자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우암선생의 현손중 왕자사부의 직책에 있었던 자신의 조상을 나타내기 위한 비석으로 추정됩니다. 원래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