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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문화재 (265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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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의약박물관에 전시중에 있습니다.주전자의 몸통모양이 참외모양으로 세로로 골이 파여져 있는 몸통과 뚜껑을 가진 손잡이 주전자입니다. 뚜껑은 8 곳에 골이 파여져 있으며 그 중앙에 꼭지가 달려 있습니다. 주전자는 손잡이가 달린 형태로서 손잡이의 상단에 고리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각 골이 파인 몸통의 부분마다 꽃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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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산은 청주의 진산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찰이 있으며 또한 절터도 많이 존재합니다.명암동 명암약수터 뒷길로 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청주곽씨들의 선조사당인 상당사를 볼수 있습니다.상당사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자연암반 지대를 만나게 되며 마애불은 그 곳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두 구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으며 두손에 홀을 쥔 동자승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마애불이 쌍둥이 마냥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암반을 깍아서 조성해 놓았습니다.마애불을 바라보며 오른쪽 마애불은 코가 훼손되어 있습니다. 마애불위로는 바위를 깍아서 호랑이를 형상화한 조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발톱과 함께 이빨등은 호랑이를 나타내지만 머리부분은 조금 정교함이 부족한 듯 합니다. 비스듬한 바위 위에 조각해 놓아서 사진촬영등을 할때는 조심해야..
일제강점기 시절 호암지를 대대적으로 축조할 때 여러가지 사고등으로 죽은 일본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으로 전해 집니다. 특히나 일본인 잠수부가 공사를 할 때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아마 그 일본인을 기리기 위한 탑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암석을 세워 위령탑(慰靈塔)이란 글씨를 각자 하여 놓았습니다. 1937년 5월23일 자와 25일자 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충주수리조합 호암제에서 통관(桶管) 파손 수리공사를 하던 인천 조일조(朝日組) 잠수부 고하만치(古賀萬治·44)씨가 5월 17일 익사하자 닷새 만에 한국인 제자 김성손(27) 씨가 높은 수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신을 건져냈다. 충주수리조합은 조합장과 충주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지낸 뒤 고하만치씨의 매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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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현이 충북관찰사를 지낼 당시 아들인 의현과 함께 이 곳 화양동을 방문하여 금사담가 암벽에 이름을 각자하였습니다. 관찰사정태현자의현(觀察使鄭泰鉉子谊賢) 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정태현은 대한제국기 충북관찰사,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료입니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여칠(汝七).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縣監) 정재범(鄭在範)이며,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 임병조(林炳祖)의 딸이다. 백부인 감역(監役) 정재행(鄭在行)에게 입양되었다. 1883년(고종 20) 천거로 동몽교관(童夢敎官)이 되고, 1886년 한성부주부(漢城府主簿)가 되었다. 1894년 동학난이 일어나자 두동(杜洞)으로 들어가 살면서 어려운 친척들에게 토지를 떼어주고 동리의 어려운 자들을 모두 도와주니 목비(木碑)와 석비(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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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청천면 화양계곡 금사담가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이름각자입니다. 안효진,정시원,김영훈등이 같이 이 곳 계곡을 방문하였다가 각자한것 입니다.安孝鎭 鄭時元 金永勳이라고 힘있는 필체로 새겨 놓았습니다.각자된 인물들에 대하여 알아보았지만 잘 알수는 없습니다. 인터넷을 보다가 가장 근접한 상황으로 논문에서 이 곳 화양동과 연관이 있는 인물의 흔적을 찾을수 있었습니다.바위에 암각된 안효진과 동일인인지는 알수가 없지만 관련성이 가장 높은것 같습니다. 아래내용의 지산 안효진이 맞는다면 이 각자는 일제강점기쯤에 각자된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20세기에 들어서며 일제의 통치와 서구 문물의 유입 등 국내외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유교의 위상도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유학을 고수했던 당시 유림들은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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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절의(忠孝節義)는 우암송시열의 학맥 인물들이 '한국 최고의 구곡(九曲) 화양구곡' 암벽에 새겨놓았다. 충(忠)은 국가와 사회의 공존공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효경'에 "효(孝)는 자신을 잘 수양하고 인륜적 도리를 실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리고 부모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절개는 군신 친구 남녀 부부간 등 인간관계 때 지켜야하는 정렬(貞烈)과 절제이다. 맹자는 "의리는 사람이 가야할 바른 길이다"라고 했으며 '호연지기'는 의(義)가 모여 생긴다고 했습니다. 화양구곡의 제4곡인 금사담 주위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글씨를 알수 있습니다. 금사담과 함께 첨성대 그리고 파천가에는 많은 암각자들이 산재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