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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효자문 (4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윤령(尹聆, 1543~1593)은 조선시대 효자이다. 본관 파평. 자 언성(彦聲), 호 모암(慕庵). 청원군 북이면 내추리출신. 파평부원군 좌익공신 공간공(恭簡公) 윤형(尹炯)의 현손으로 부친은 충좌위 부사관 사화(思和), 어머니는 행주 기씨(幸州奇氏)이다. 8세 때에 부친과 백씨의 상을 함께 당하여 3년간 묘막살이를 하였다. 15세 때 또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향하며 하늘에 축원하기를, “이 몸이 대신 죽어서라도 어머님의 병환만 낫게 해 주십시오”라고 빌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해 8월에 별세하니 선산 내추리에 합장하였다. 공이 다시 시묘를 살 때 그 효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디선가 까치와 까마귀 한 쌍이 묘 앞 나무에 날아들어 수시로 울고 그치기를 계속하다가 3년이 되어 날아가..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서당입니다.충북시도기념물 제 51호로 지정시기는 1984년 12월31일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불. 충청북도 기념물 제51호. 2단으로 쌓은 석축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정방형에 가까운 모양의 덤벙주춧돌을 놓고 민흘림으로..
승정원일기 126책 (탈초본 2666책) 철종 14년 7월 3일 정미 22/33 기사 1863년 同治(淸/穆宗) 2년 ○ 又啓曰, 守令多窠, 今當差出, 而未準朔禁軍將及營將·邊將·虞候·中軍·都事·守令·察訪, 竝擬, 何如? 傳曰, 允。 以金碩根爲義盈主簿, 李濟民爲典設別提, 南羲重爲咸平縣監, 朴齊瑛爲松..
원남면 반기문선생의 생가를 방문하다 보면 인공호수옆에 작은 바위기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방문시에는 보지 못했던것이라 자세히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각기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혹여나 이 고장 출신인 반기문선생과 연관지여 생각해도 재미 있을 듯 ..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임호현의 처 광주안씨 효행을 기리는 비이다. 단월동 상단마을 입구의 임형업 정려각 옆에 자리 잡은 효행비로, 감정공(監正公) 임성업(林成業)의 8대손 임호현의 처 광주안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단월동 상단마을..
임형업은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계영(繼榮).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황(林篁)이고, 형으로는 병마절도사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과 임승업(林承業)이 있다. 조선중기 충주출신의 효자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형인 임승업이 맹산 수령으로서 출전한 뒤 형 대신 노모를 봉양하다가 이듬해 모친상을 당하여 밤낮으로 슬프게 통곡하였다. 이때 청나라 군사가 마을에 침입하여 주민이 모두 도망갔으나 홀로 남아 관을 안고 통곡하자 청군도 그 효성에 감동하여 ‘효인불가해(孝人不可害)’라고 써서 대문에 붙이고 돌아갔다. 그리고 뒤에 쳐들어온 청군들도 침범하지 아니하였다. 이후 관을 선영 밑에 예장하고 3년 동안 시묘한 후 집에 돌아와서도 늙도록 사당에 가서 날마다 참배했다. 그리고 임오년(壬午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