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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 (12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회인지구대앞에 자리하고 있는 회인면 중앙2리 마을 표지석입니다.표지석 옆으로는 거북돌 모양의 회인여단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면의 중앙에 위치하며 동쪽은 부수리, 서쪽은 청원군, 남쪽은 눌곡리, 북쪽은 용촌리와 접해있다.본래 회인군청 소재지로 회인군 읍내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근동과 사동, 눌곡리, 평창리의일부를 병합하여 면의 중앙이 되므로 "중앙리"라 하고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뒷산을 송정봉으로 그정상에 옛날에 "기우제"를 올리던 우단이 있고, 백학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송정봉 왼쪽은 사직봉으로 사직단이 있고, 오른쪽은 금수봉이며 봉아래 돌출된 언덕은 말무덤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파평윤씨, 남양홍씨, 경주최씨, 장기정씨등이 향리로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마평..

화곡 2리는 화곡리 행정리동의 하나로 원래 충주군 주덕면의 지역으로 화개산 골짜기가 됨으로 화곡리라 칭하여 법정리가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리(中里), 계막(桂幕), 이암리(耳岩里) 일부를 합병하였고 현재 화곡2리는 원화곡으로 불려지고도 있으며 마을자랑비나 최근에 설치된 다리명에도 ‘원화곡’이라 씌여지고 있다. 자연마을은 계막, 강당, 구야, 여의래, 곰실, 검박골, 동막골 등으로 불려 왔으며 한때 본 마을의 원거주지인 여의래(如意來)는 원래 여의천(如意川)이라고 칭하였으나 수차례 수해를 보게되고 기근이 잦아 내 천(川)이 불길하다고 하여 올 래(來)로 개칭되어 여의래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그후 행정구역은 주덕면 원화곡과 계막으로 분리되어 오다가 1990년 1월 1일자로 ..

바랑골[靑龍里] 바랑골은 청원군 가덕면 소재지에서 동남 방향 약 4㎞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 마을이다. 고려 선종(宣宗) 때, 황룡사 주지 혜운(慧雲)이 금강산을 지나 용인 부근 문룡암(文 龍庵)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문살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운이 놀라 눈을 뜨니 경주 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에 점을 치니, 황룡사가 불에 타고 있는 징조였다. 혜운은 동이에 물을 퍼 주문을 외며 남쪽 하늘을 향해 힘껏 끼얹었 다. 그러자 붉게 물든 하늘이 점차 어둠으로 변해갔다. 혜운의 도술로 황룡사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이어 혜운이 충청도 땅에 이르러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그 날 혜운의 꿈에 석가가 현몽하여, “바로 지금 그 자리가 부처님의 뜻 을 전하는데 적격한..

선녀바위[仙岩里] 북이면 선암리에서 북쪽 방향 500m 즈음에 평탄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틈에서 물 이 흘러 옹달샘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꼭기할미바위’ 혹은 ‘선녀바위’라고 한다. 옛날, 의원 한 명이 계곡의 바위 그늘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의탁하고 있었다. 아침 나절 환자가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끝내 살리지 못한 터였다. 스물을 갓 넘은 젊은이였고 병도 대단하지 않았는데 구명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의 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의원은 뻔히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살리지 못 한 스스로의 무능이 한스러웠다. 그는 돈만을 중시하는 항간의 의원들과는 판이했다. 빈부지천을 가리지 않고 병만 을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꼈..

괴산군 청천면 화양계곡 입구에 있는 마을입니다. 상가와 함께 숙박시설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양동은 우암 송시열의 생이 함축되어 있는 곳입니다. 화양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화양구곡은 멋진 절경과 함께 그 시대의 아픔과 상황을 잘 이야기 해주는 곳입니다. 산책과 더불어 역사공부로서의 장으로 참 좋은곳입니다.

아침에 동네가 난리가 났다.무릉리에 살던 송씨가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목을 맸다고 한다. 전날 송씨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버님을 뵈러 간다고 하더니 돌아오질 않아송씨의 아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아버지의 산소를 들리니 송씨의 조상들이 모셔진 선산 한귀퉁이에 자리잡은 소나무에 송씨가 목을 매었다고 했다.당신의 모습을 닮은 조금은 구부정한 소나무에 목을 맨 송씨의 모습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무릉리 송씨의 죽음은 흐르는 바람을 타고 온 동네와 지근마을에 퍼져갔다.송씨의 죽음을 슬퍼하는 식구들의 울음소리가 조금은 잦아들 무렵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벌을 받은거여..." "돈 몇 푼에 조상을 팔았으니 당연한거지" "하늘이 벌을 준거여..." '먼젓번에 묘정비에 손을 댔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