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밀양박씨
- 사인암
- 각연사
- 화양동 암각자
- 한독의약박물관
- 곡산연씨
- 법주사
- 효자각
- 부여박물관
- 문의문화재단지
- 선돌
- 보성오씨
- 경주김씨
- 부도
- 오블완
- 충북의 문화재
- 공산성 선정비
- 청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사과과수원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상당산성
- 화양구곡
- 국립청주박물관
- 효자문
- 티스토리챌린지
- 문경새재
- 충주박물관
- 단지주혈
- 공주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전설따라 삼천리 (11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마장리는 도장리 서쪽, 문수산 아래에 위치한다. 동쪽은 두릉, 도곡리에 인접하며 남쪽 은 대안리 북단, 서쪽은 귀평리 안남 도농리 소야, 북쪽은 오덕리 팽정과 평야지로 접한다.마장리에는 옛날 관리들의 여행자 숙소인 은천원이 있었고, 그곳에 말을 매어 놓는 곳 이 있어 말바탱이라 불려서 마장馬場이라 했다. 옛날부터 풍수해와 가뭄이 없고 들이 넓고 풍요로와 청산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청산의 제일은 마장이다’라고 구전 된다. 주요 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배출한 옥천육씨이며, 마을 뒷산에 목사공 선대 묘소와 재실이 있다. 한우 사육 농가가 많으며 벼농사와 사과, 인삼 등을 재 배한다. 문화유적으로 조계종 문수암과 태고종 대성사 미륵부처 석상 등이 있다. - 마장(馬場, 말바..
서대리(書垈里)는 원래 군남면(郡南面) 송고개리(松古介里), 신대리(新垈里), 서당리(書堂里)와 신원리(新院里) 일부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이를 합쳐 서대리라 하고 옥천읍에 속하게 하여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남면 송고개리에 35호, 신원리에 69호가 살았으며, 1891년 기록에는 송고개리에 10호, 신대리에 10호, 서당리에 12호, 신원리에 45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이곳의 송고개리는 현 솔고개를 가리키는 것이며, 신원리는 현 군남초등학교에서부터 원각(院覺)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곳에는 관리들의 여행 중 숙식을 제공하던 금천원(金川院)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하여 군내면이 되면서 이 때 송고개리, 신대리, 서당리와 신원리 일부를 합쳐 서대..
도율리는 도촌(道村)과 율티(栗峙)가 합하여진 마을로서 옛기록에 이 마을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일제조정때 도가실과 밤티를 합하여 도율리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율리라 이름 짓게 된 것은 두 마을을 합치면서 도촌마을의 도(道)자와 율티의 율(栗)자를 한자씩 취하여 도율리라 칭하게 되었다. 도촌은 원래 “도가실”을 한자화할 때 발음대로 “도”를 길도(道)로, “실”을 마을촌(村)으로 사용하여 도촌(道村)으로 부르고 있으나 사실은 옥천~보은의 옛길은 이곳을 지나 월외~장선~동정~회인(보은)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상인들이 쉬어가거나 물건을 받아가는 도가(都家)가 있어 이 마을을 도가실이라 하였다. 율티는 옛말로 “밤티”를 한자화하여 밤율(栗) 고개티(峙)를 써서 ..
괴석을 이용하여 마을자랑비를 만들었습니다. 화강석으로 만든 대석위에 괴석을 올려놓고 괴석에 홈을 파서 마을자랑비를 만들어 홈에 끼워넣었습니다. 오석에 답양리미을자랑비리고 쓰여 있으며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였습니다. 답양리는 채운산을 비롯하여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산촌마을이다. 가산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라 하여 옛날에는 아름다울 가佳, 묏 산山을 써서 가산佳山이라 하였다. 답양리 면적은 10.87㎢이며 서쪽 채운산을 비롯 하여 동쪽은 용문산 등 500m급 산들이 둘러싸고 가산천이 북쪽으로부터 답양리 가산계곡을 휘돌아서 북서쪽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로 흘러 대청호로 들어간다.답양리는 조선후기 『여지도서』 기록에 따르면 가산리佳山里에 속하였고, 1830년대 『옥천 읍지』에서는 옥천 관문에서 북쪽으로 ..
귀화리는 구일리 북부에 위치하며 돌남산 동편 기슭과 퇴미산 사이의 구릉지인 고지대 에 위치하며 마을회관이 있다. 지리적으로 동쪽은 동이면 소도리, 남쪽은 귀죽리, 서쪽은 장야리, 서대리, 북쪽은 매화리, 동이면 남곡리와 접한다. 귀화는 구일리를 예부터 귀일貴日골이라 불러 귀할 귀貴에, 마을 앞산에 봄꽃이 많이 피어난다 하여 꽃 화花 자를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구일리는 옥천읍 동부 중앙에 위치하며 면적은 2.79㎢,이다. 동쪽은 퇴미산과 함박산 능선으로 동이면 평산리와 세산리, 남쪽은 원각리, 서쪽은 돌남산 능선으로 장야리와 서대리, 북쪽은 매화리 및 동이면 남곡리 구일농공단지와 접한다. 구일리는 조선시대에 발간된 『여지도서』나 『신묘장적』에 귀일리貴日里로 기록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귀..
금암3리는 용암마을이라고 불리우는 고창오씨들의 집성촌입니다. 금암리는 군동면(郡東面) 용암리(龍岩里)라 불리던 마을이며, 1739년 기록에는 군동면 용암리에 47호가 살았고 1891년 신묘장적(辛卯帳籍)기록에는 55호에서 15세 이상 255명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금암리 유래는 마을 뒤에 용암사란 절이 있고 큰 바위들이 용같이 뻗었다 하여 용암말 이라 불렸고 옆마을이 목시, 목쇠인데 목쇠는 목금(木金)으로 목금의 금(金)자와 용암의 암(岩)자를 따서 두 마을의 뒷글자를 합쳐서 금암리가 되었다. 금암리에는 충청북도문화재인 1545년 송정 전팽령이 건립한 양신정(養神亭)과 1765년 유림들에 의해 세워진 목담서원이 있다. 목담서원(鶩潭書院)과 목담서원에 모셔진 사서공 전식 선생의 영정, 명종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