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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 (11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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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괴산군 남하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갈골 윗여생이과 방성골(方城골)을 병합(倂合)하여 방성리(方城里)라 하여 문광면(文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이곳 웃여생이은 청천면 아랫여생이에 인접하여 다같이 여생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이 다를 뿐이다. 갈 골(盧洞) : 방성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쪽에 청천면 대전리 서쪽에는 청천면 토성마을이 인접하고 있고 구 괴산읍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방성리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다. 옛날에 갈대밭이 있었던 마을이라 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웃여생이(웃如思旺里) : 방성골마을에서 남서쪽에 잇는 마을로 전에는 청천면 여사왕리와 한 마을이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방성리에 병합(倂合)되었다. 방성골(方城골) : 일명 원방성..
진촌리는 면소재지에서 농로를 따라 분지리 소류지 방면으로 약 3km 지점에 위치하며 동은 분지리, 서남은 중리 북은 삼풍리 남은 경상도 문경시 가은읍과 접하고 있다. 조선조 숙종조 신묘(1711)에 기록한 연풍읍지에 현내면 재현5리에 인지동(진촌, 중리, 은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개금나무 숲이 있어 마을 이름을 진촌이라 하였음.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티동, 진촌, 매바우, 새봉 중리를 병합 주진리라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다가 8.15 해방 후 중리 은티리와 분리 진촌리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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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장리(板藏里)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남면(南面)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널처럼 되었으므로 늘개미, 광포(廣浦) 또는 판장(板藏)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담리(沙潭里) 일부를 병합하여 판장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일부 수몰되었다.광포1구는 판장1리에 속한다. 조곡리 사실마을을 지나 한 구비 돌면 판장리다. 북으로 조곡리, 동으로 회인천 건너 신곡리, 남으로 분저·은운리, 서로 옥천군 안내면 노성리와 접해 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으로 지형이 널처럼 되었다 하여 늘개미, 광포 또는 판장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담리 일부를 병합하여 판장리라 하고 보은군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대청댐 담수로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늘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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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면사무소에서 지방도를 따라 회인으로 향하면 거교리 다리를 건너며 우축으로 길을 들어서 처음마나는 동네가 조곡1리 새실이다. 조곡2리 마전사는 조곡1리에서 좁은 고갯길을 자동차로 10여분 더 들어가야 한다. 조곡리는 국사봉에서 부터 회인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북으로 금곡리, 동으로 국사봉 너머 수한면 노성리, 남으로 판장리, 서로 회인천 건너 거교리와 접해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이다. 노성산과 호점산성 사이가 되므로 새실 또는 조곡 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곡리라 하고 보은군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대청댐 담수로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사실(새실), 마전사가 있으며, 지명으로는 가는골, 건너들, 굽은딩이, 구수샴골, 남산골, 느름싱이, 달기봉, 도람말, 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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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암리(赤岩里)는 본래 보은군 왕내면 지역으로서 붉은 바위가 있어 ‘적바위’ 또는 ‘적암’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적암리’라 하고 마로면에 편입되었다. 적암리는 보은의 동쪽 끝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와 접하고 있고, 서쪽과 남쪽으로 갈평리와 임곡리를 마주보고 있으며, 북쪽으로 구병리와 사이에 구병산(해발 876.0m)를 안고 있다. 상주시 사이에는 시루봉을 두고 있어 갈평저수지와 시루봉, 구병산을 잇는 삼각형 안에 조용히 마을이 들어앉은 형국이다. 이렇게 물과 산 사이 기(氣)를 키워 가는 지형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적암리 일대에는 큰 장수(인물)가 날 것이라는 전설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 혹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바로 이러한 정기를 끊기 위해 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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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리는 본래 회인현(懷仁縣) 동면(東面) 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洞)라고 부르고 구룡산(九龍山) 밑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 보은군(報恩郡) 회북면(懷北面) 관할이 되었으나 1946년 2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 에 편입되었다. 법주리 마을입구에 철근과 스레트로 만든 정자에 법주리 지도가 예쁘게 걸려 있습니다. 옛지명인 버드리도 이쁘게 각자되어 현판으로 걸려 있습니다. 정자옆으로는 법주리 유래비와 함께 1994년도에 세운 법주리 마을표지석이 같이 어깨동무하고 있습니다. 법주리는 본래 회인군 동면 지역으로 구룡산 아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법주리라 하고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