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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설따라 삼천리 (11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본래 회인군(懷仁郡) 남면(南面)의 지역으로서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해서 새터 또는 신대(新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리라 하고 회북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일부 수몰되었고, 마을을 저지대에서 새로 개설된 도로 아래로 이전하였다. 새-터(新垈)[마을] 신대리 마을. 처음에는 회인천(懷仁川) 건너에 있는 죽암 2리와 합쳐 새터라 부르고 죽암 2리는 양짓말, 신대리는 음지말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새터라는 이름보다 신대라고 많이 부르고 있다.2019년 5월24일에 세워만든 신대리(새터)마을 유래비가 마을 초입에 건립되었다
신기마을은 본래 괴산군 북하면의 지역으로서 새로 터를 잡아서 마을을 이룩하였으므로 새터말 또는 신기리(新基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용당(龍塘), 당곡(唐谷), 도락동(道樂洞)을 병합(倂合)하여 신기리(新基里)라해서 불정면(佛頂面)에 편입(編入)되었다가 1947년 1월에 괴산읍으로 편입(編入)되었다. 당골(唐谷) : 새터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당집이 있어 붙여진 이름 도락골(道樂洞) : 당(唐)골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피난 갔다가 돌아와서 모여 사는 동내라 해서 지칭된 이름. 아랫말 : 용당(龍塘) 아래쪽에 있는 마을 용당(龍塘) : 새터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절골 :신기의 안터 옆골로서 고려때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 지금도..
어지미는 진천군 덕산면 인산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다. 옛 선인(先人)들이 앞들에 있는 못에서 고기를 낚구어 먹으니 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이 곳에서 정착하여 살아오다 고기 어(魚) 자에 못 지(池) 자, 맛 미(味)자를 써서 어지미(魚池味)라 칭하게 되었다. 약 60여호에 쌀과 고추 담배를 생산하고 있다. 옛 선인들이 마을 앞에서 고기를 낚아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어지미(魚池味)’라 하나, 신빙성은 떨어진다. ‘어지미’는 본래 ‘어진미’가 아니었을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진미’ 혹은 ‘어지미’는 어진 모습의 산’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이를 한자화한 지명이 인산(仁山)이다. 이곳에서는 어진 사람이 노는 산으로 해석하고 있다
청천면은 고구려시대 살매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청천현으로 개칭했다. 이후 고려 때는 청주목에 속하는 청천현으로 불렸다가 1413년 청천면이 되었다. 괴산군 중에서 가장 큰 면이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면리(松面里)·덕평리(德坪里)·강평리(江坪里)·귀만리(龜灣里)·도원리(桃源里)·대티리(大恃里)·무릉리(武陵里)·삼락리(三樂里)·월문리(月門里)·지경리(地境里)·화양리(華陽里)·상신리(上新里) 등 21개의 법정리와 44개의 행정리를 관할한다. 남쪽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化北面)·보은군 산외면(山外面), 동쪽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농암면(籠岩面), 북쪽은 칠성면(七星面)·문광면(文光面), 서쪽은 청안면(淸安面), 남서쪽은 청원군 미원면(米院面)과 접한다. 면의 남동부에 소백산맥이 뻗어 있어 면..
조선 왕실은 태(胎)는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명당자리를 고른 후 해당 예법에 따라 정성스럽게 매장했다. 그 시설물이 태실(胎室)이다. 나아가 왕실은 태실의 주위에 금표(禁標)를 세워 채석·벌목·개간·방목 등의 행위를 금지시켰다. 금표를 세우는 범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어, 왕은 300보(540m), 대군은 200보(360m), 기타 왕자와 공주는 100보(180m)로 정했다. 우리고장에는 진천군 진천읍의 김유신 태실, 충주 엄정면 괴동리의 경종대왕 태실, 청주 낭성면 무성리의 영조대왕 태실, 보은 속리산면 사내리의 순조대왕 태실, 청주 문의면 산덕리 태실 등 5개 태실이 존재한다. 왕명과 인명이 부여된 것에서 보듯 이들 태실은 주인이 모두 확인된다. 이에 비해..
문광면에 속한 신기리는 승주산 아래의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가나무정, 탑골 등이 있다. 가나무정은 가정이라고도 부르는 신기리의 원마을로 옛날 정자같은 가나무(노나무)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탑골은 고려시대 절탑이 승주골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새로 터를 잡아 이룬 마을이라 하여 신기라는 명칭이 생겼다. 탑골마을은 신기2구에 속한다. 탑골이라는 명칭은 동네에 위치한 삼층석탑에서 유래되었다. 석탑은 도난당하였으며 몸돌 하나를 이용하여 다시 탑을 세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