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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48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마로면 관기리에 있는 고봉정사 입니다. 조선 중종 때 최수성(崔壽峸)·김정(金淨)·구수복(具壽福) 등이 함께 창건하고 강학(講學)을 행하였으며, 구일봉(具壹奉)이 지금 자리로 옮겼습니다. 1981년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정사를 해체하여 보수하고, 고봉사(孤峯祠)·관리사(管理舍)·창고·삼문 등 담장을 새로 지었다. 구씨종중(具氏宗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송시열(宋時烈)이 쓴 고봉정사의 현판이 있었으나, 현재 걸려 있는 현판은 최규하(崔圭夏)가 쓴 휘호입니다. 관기리 시내에 있던 완산이씨 열녀각도 고봉정사 옆으로 이건하였습니다.

이 충신각은 조선 선조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 순직한 윤여익(尹汝翼 ; 1548~1592)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윤여익은 중봉 조헌선생의 문인으로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을 따라 의병에 참가하여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하였다. 1883년(고종 20)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정면 2.3m, 측면 2.0m)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지붕부재는 최초 건립당시 부재를 사용하였으나, 하방석 및 주초는 이설한 뒤 건물을 높이는 과정에서 콘크리트 재질로 시공하였다. 내부에는 ‘忠臣旌閭 忠臣將仕郞坡平尹汝翼之閭 光緖 九年 癸未 八月 十九日 啓’’라는 현판과 행장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있다. 1883년 (고종 20년)에 정려가 하사되었으며 조중봉 ..

세중리 인근에 흩어져 있던 공덕비와 기념비등을 마을에 위치한 세중초등학교앞에 시멘트기단을 만들어 모아 놓았다.조선시대의 군수의 공적비부터 일제시대때 까지의 각종 기념비가 8기가 자리하고 있다.세중리는 본래 보은군 마로면의 지역으로서 조선 때 역마(驛馬)를 먹이던 곳으로 역마, 또한 마루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內洞)을 병합하는 세중리라 하였다. 마로면 세중리 세중초등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다.은사배보현육영기념비(恩師裵甫鉉育英紀念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배보현은 일제시대 였던 1922년 교육계에 투신하여 보은군일대에 국민학교에서 초등교육에 전념하였다.1961년 9월에 보은 관기국민학교 교장을 끝으로 39년동안 지역 교육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세중초등학교는 1935년 4월에 세중공..

능성인 병암 구수복의 부인인 완산 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537년 중종 32년에 명정되어 세운 정문이다.마을끝 야산입구에 있던 정려문을 이 곳 고봉정사옆으로 이건하였습니다. 마로면 관기리 완산이씨절부각(馬老面 官基里 完山李氏節婦閣) (tistory.com) 마로면 관기리 완산이씨절부각(馬老面 官基里 完山李氏節婦閣) 능성인 병암 구수복의 부인인 완산 이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537년 중종 32년에 명정되어 세운 정문이다. 최초에는 마로면사무소 앞에 있던 것을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보은에서 king6113.tistory.com 구수복[1491년(성종 22) ~ 1535년(중종 30)]은 조선전기 수찬, 이조좌랑, 구례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백응(伯凝)·..

탄부면 평각리 마을회관앞에 자리하고 있는 전주인 이해관의 공적비입니다. 전주이공해관공적비(全州李公海寬功績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평각리 마을회관을 지을 때 회관부지를 희사한 이해관의 공을 잊지않기 위하여 마을주민들이 마을회관옆에 세웠습니다. 본래 보은군(報恩郡) 사각면(思角面)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부리같아 평각(坪角)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동(新洞)일부를 병합하여 평각리(坪角里)라 해서 탄부면(炭釜面)에 편입되었다.

동산리에 있는 경주김씨의 묘역입니다. 김벽부부의 묘와 함께 그의 부모인 김증손의 묘와 어머니인 전주이씨의 묘 그리고 아들인 김천주의묘등 경주김씨가문의 묘역이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묘역으로 찾아드는길을 잘못들어 논둑길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서 묘역을 볼수 있었습니다. 김벽(金碧) 부부의 묘 동산골에 있는 경주인(慶州人) 건공장군충순위부사직(建功將軍忠順衛副詞直) 김 벽(金碧)과 그의 부인 숙부인(淑夫人)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쌍분묘로 묘갈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김벽묘 앞에 있는 묘갈은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박광우(朴光佑)가 짓고 세워져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김로(金魯)가 썻고 유씨묘앞의 묘갈은 그들의 사위인 사재감정(司宰監正) 성운(盛運)이 짓고 예조참판(禮曹參判) 이택(利澤)이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