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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5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순창인 조용하와 그의 부인인 평택임씨의 쌍정려입니다.조용하(趙用夏)는 본관이 순창이고 자는 윤집이며 문정공 염의 후손이다. 이 정문은 단칸 맛배지붕목조기와집이다.조용하와 처 임씨열녀의 효행 행적을 보면 조용하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보전을 하자 단지주혈로서 효력을 보았고, 그의 부인인 평택임씨는 남편인 조용하의 병이 위중하자 평택임씨 또한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병을 고치게 하였다. 이런 효행이 알려지자 효행과 효열로 상지25년(고종25년 서기1888년)지평(持平) 벼슬을 증직하고 그의 부인과 함께 효자·열녀의 쌍정문이 하사되었다.단청등이 바래있으며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것 같습니다. 孝子 贈通訓大夫 司憲府持平 趙用夏之門 효자 증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조용하지문 烈女 贈淑..

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노래가사처럼... 언제나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소이면 탑산골 후미리 석탑은 오늘도 세월을 깁고서 오는 손님 반겨준다.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tistory.com) 소이면 후미리 석탑(蘇伊面 厚美里 石塔) 지명도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탑상골" 조금은 외떨어진 산골짜기 , 무덤가 한켠에서 외롭게 세월을 깁고 있습니다. 밑에 자리했던 복숭아 과수원은 고목을 모두 베어내고 새로 묘목을 king6113.tistory.com 후미리 석탑 - 디지털음성문화대전 (grandculture.net) 후미리 석탑 - 디지털음성문화대전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개설]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일반적으..

소이면 대장리 대장초등학교에 있는 후미리석불입니다. 후미리사지에 있던것을 1970년 후반경 반출되어 동네주민의 집에 있다가 대장초등학교에 세워졌습니다. 마을 주민(노명식, 67세)의 전언에 의하면 석불은 과수원(후미리 1614-10번지) 한가운데 서 있었으며, 발부분은 묻혀 있었고, 지상에노출된 전체 높이는 1.5m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불상이 큰 돌에 붙어있었다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바위에 양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은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을 무렵 새마을 지도자들이 천렵을 왔다가 경운기에 싣고 갔다고 하며 주민들이 찾으려했으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사지발췌] 후미리사지와 대장초교석불의 관계 (tistory.com) 후미리사지와 대장초교석불의 관계 후미리..

원남초등학교 뒷길로 하여 좁은길로 재촉하여 걷다보면 만날수 있는 석불좌상입니다. 차량통행등은 조금 불편합니다.석불좌상을 모신 보호각도 이제는 세월을 입고 많이 쇠락되었습니다. 찾는 이 많치는 않치만 문화재 돌봄사업소에서 주위도 청소하고 깨끗히 정리하여 놓았습니다. 비지정 문화재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보룡사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불상이다. 보룡리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는 원형관을 쓰고 있는데,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나타나 있고, 귀는 길게 어깨에 닿았으며 얼굴은 풍만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눈과 코, 입은 파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가 없다. 양손은 무릎 위에 놓았고 양발은 결가부좌하여 당당한 자세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通肩)인데, 의문(儀文)의 굴곡이 ..

양촌 권근(1352∼1409)과 그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지에 있던 묘표로, 묘표(墓表)는 죽은 사람의 사적과 덕행을 기리는 글을 새겨 무덤 앞에 세워 놓았던 것을 말한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2001년 3월30일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양촌 권근의 묘표석은 권근 선생이 1409년 2월에 죽은 후 그해 4월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 치모노금동(현재의 성남시 금토동)에 예장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 26년(1444) 3월 묘지를 이장할 때 현지로 운반하지 못하고 456년이 지난 1965년에 권근 선생 사당으로 이전하여 보호 관리해 오고 있다. 권근의 묘표는 8각형의 형태로 8면 중 4면에만 비문을 조각한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길이 91㎝이며, 지붕돌은 없어진 채 표석만 보존되어 오다가 최..

생극면 방축리 권근삼대묘를 지나서 위치하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의 위패를 봉안한 사우이다. 지금은 공자를 주 위패로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하고 있다. 최초의 도통사는 1734년(영조 10)에 충주 지방 유림들이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8년 사우를 중수하며 독립 정신을 함양하는 집합 장소가 사용하다가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