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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회관 화단에 있는 강릉인 김남일의 공적비입니다.2005년에 세워졌으며 마을회관 건축시 마을발전과 주민들을 위하여 자신의 토지를 희사한 김남일의 공적을 잊지않기 위하여 마을주민들의 이름으로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강릉김공남일공적비 라고 한글로 오석에 새겨 놓았습니다.

조선 전기 효자 양수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효자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정 출신인 양수척이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와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고 늙은 어머니에게도 효도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러눕게 되자 고려장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청주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효자로 이름난 경대유(慶大有)[경연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삼형제를 불러 꾸짖자 양수척 3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이후 노모에게 효행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모친이 중병으로 눕게 되자 청주성으로 들어가 한약을 지어 돌아오는 중에 홍수가 나서 월운천을 건너지 못하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천의 물이 갈라져 건너게 되었으며 약을 달여 모친의 병구..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자리하고 있는 모암공 강릉인 김덕숭의 신도비입니다. 한쪽으로는 예전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번에 후손들에 의해서 새로운 신도비를 만들었습니다.옆에는 신도비를 만들며 물질적으로 헌신한 종중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오석도 일기 세워져 있습니다. 문백면 평산리 김덕숭묘지(文白面 平山里 金德崇墓地) 문백면 평산리 김덕숭묘지(文白面 平山里 金德崇墓地)김덕숭의 효행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효행으로 1448년(세종 30) 명정되었고, 1633년(인조 11)에 이월면 사곡리 사지 마을에 효자문이 세워졌다. 김덕숭은 부모를 공양하는데 정성을 다king6113.tistory.com 이월면 사곡리 김덕숭효자문(梨月面 沙谷里 金德崇孝子門) 이월면 사곡리 김덕숭효자문(梨月面 沙..

문백면 평산리에 자리한 김귀성의 묘 밑에 있는 김귀성의 신도비입니다.김귀성은 강릉인 출천지효자인 김덕숭의 장자로 김덕숭의 묘지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신도비 전면에는 통정대부참의행통훈대부서부령강릉김공귀성지묘( 通政大夫參議行通訓大夫西部令江陵金公貴誠之墓)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른면에는 김귀성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바랑골[靑龍里] 바랑골은 청원군 가덕면 소재지에서 동남 방향 약 4㎞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 마을이다. 고려 선종(宣宗) 때, 황룡사 주지 혜운(慧雲)이 금강산을 지나 용인 부근 문룡암(文 龍庵)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문살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운이 놀라 눈을 뜨니 경주 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에 점을 치니, 황룡사가 불에 타고 있는 징조였다. 혜운은 동이에 물을 퍼 주문을 외며 남쪽 하늘을 향해 힘껏 끼얹었 다. 그러자 붉게 물든 하늘이 점차 어둠으로 변해갔다. 혜운의 도술로 황룡사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이어 혜운이 충청도 땅에 이르러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그 날 혜운의 꿈에 석가가 현몽하여, “바로 지금 그 자리가 부처님의 뜻 을 전하는데 적격한..

선녀바위[仙岩里] 북이면 선암리에서 북쪽 방향 500m 즈음에 평탄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틈에서 물 이 흘러 옹달샘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꼭기할미바위’ 혹은 ‘선녀바위’라고 한다. 옛날, 의원 한 명이 계곡의 바위 그늘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의탁하고 있었다. 아침 나절 환자가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갔으나 끝내 살리지 못한 터였다. 스물을 갓 넘은 젊은이였고 병도 대단하지 않았는데 구명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의 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의원은 뻔히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살리지 못 한 스스로의 무능이 한스러웠다. 그는 돈만을 중시하는 항간의 의원들과는 판이했다. 빈부지천을 가리지 않고 병만 을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