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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03 (5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안동 김씨 사충문安東金氏 四忠門은 진천읍 사석리 775-2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김천추金天秋와 아우 천장天章, 아들 성추聲秋, 조카 성옥聲玉 등 한 집안에서 나온 4명의 충절忠節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英祖 12년(1736)에 세운 정려旌閭이다.현재의 정려는 1958년에 개축改築하였으며, 1979년 방문객들이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정화사업淨化事業을 진행하였다. 덕분에 정려 주변이 정돈되어 있고 그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사충문四忠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원각 기둥의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다. 양면에 풍벽을 달았고, 사면을 홍살로 막았으며 정려 주위를 돌담장으로 둘러놓았다. 사충문 앞에는 ‘일문사충一門四忠’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충신..

진천읍 행정리에 위치한 희민사希閔祠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효건과 아들 김적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진천읍 행정리 733-16번지에 위치하고, 2010년에 건립되었으며 팔작기붕 목조기와집이다. 김효건金孝騫의 본관은 안동이며 안렴사 김사렴의 6세손이다. 그는 문백면 태락리에서 진천읍 원동마을로 넘어오는 고갯길에서 군사를 매복했다가 왜적을 급습했다고 한다. 김효건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이다.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

진천읍 상계리 멱수마을에 자리한 이거이 묘쇼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이거이의 신도비입니다.1976년 10원에 후손들에 의하여 새로 세워졌습니다.

따뜻한 봄날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찬바람이 골짜기안에 가득하다.상계마을 골짜기에도 바람이 제법 분다. 아무리 그래도 봄은 올것이고 또 초록의 싱그러움도 동행을 하겠지.상계리에 위치한 이거이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상계마을 마을회관에도 청허당 관리사무소라는 현판이 걸려있다.마을 차원에서도 이거이 묘역 관리에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합니다.마을 초입에 사패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계리 마을에서 산쪽으로 뻗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이거이 묘소(李居易 墓所)라는 입간판을 만날수 있다.올라오는 길이 좁아서 그렇치 묘역 밑에는 제법 넒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다. 주차하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이거이는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 또는 청허..

우리 마을은 동쪽으로 병풍산 서쪽은 노털미산 남쪽으로 황금산 북쪽은 은산(銀山)으로 사방으로 둘러싸인 아늑하고 양지바른 은산 기슭을 터전으로 삼아 자리잡은 남향 마을이다. 우리마을은 남북으로 세로 지르는 바랑골 및 사태울과 큰고개 승지골에서 발원한 하천은 수량(水量)이 많고 깨끗하여 예부터 마을의 젖줄이 되어 농업이 발달하였다. 마을 입구에는 효자(孝子) 상주박씨(尙州朴氏) 효인(孝仁) 자(字)는 자실(自實)의 정려문(旌閭門)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효(孝)에 가르침을 주어 상경(上敬) 하애(下愛)하는 마을임을 선뜻 알아보게 한다. 예로부터 황금산과 은산의 남북 중간에 황은지간(黃銀之間)에 매화낙지(梅花落地) 혈(穴)이라는 명당이 있다하여 매남이라고 불리워졌다고 전(傳)하여 온다. 오늘 우리는 과거..

진천 농다리는 백곡천에 놓인 고려 중기의 돌다리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環與勝覽』에 “고려 초 임 장군이 축조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농다리는 다른 이름으로 물이 넘쳐 흐른다 하여 ‘수월교水越橋’라고도 한다. 농다리는 작은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리고 넓적한 돌을 교각 사이에 하나씩 얹어지네 모양으로 길게 늘여 만들어졌다. 돌을 쌓아올릴 때에는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다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장마 등에 떠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어, 그 튼튼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과학적 공법의 우수함을 짐작하게 할 만큼 특이한 양식으로 축조된 이 다리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본래는 하늘의 기본 별자리를 응용하여 28칸으로 만들어졌으나 일제강점기 때 3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