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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 행정리 희민사(鎭川邑 杏井里 希閔祠) 본문
진천읍 행정리에 위치한 희민사希閔祠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효건과 아들 김적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진천읍 행정리 733-16번지에 위치하고, 2010년에 건립되었으며 팔작기붕 목조기와집이다. 김효건金孝騫의 본관은 안동이며 안렴사 김사렴의 6세손이다. 그는 문백면 태락리에서 진천읍 원동마을로 넘어오는 고갯길에서 군사를 매복했다가 왜적을 급습했다고 한다.
김효건은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5월 2일 동대문에 주둔하였고, 가토 기요마사는 이튿날인 3일에 남대문으로 들어와 서울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왜군은 창원을 거쳐 경상북도 성주를 지나 김천을 거쳐 추풍령을 넘었다. 그 후 영동, 옥천, 청주를 거쳐 진천, 죽산으로 올라와 서울로 진격하였다.
왜군이 진천에 이르렀을 때 당시 현감인 홍지(洪趾)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충청남도 내포로 도망하자 군민을 지휘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에 집강소와 향청의 책임자로 현감의 자문을 맡았던 김효건(金孝騫)이 농민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였다. 의병들은 왜적이 오는 길목의 고갯길에서 숨어있다가 왜적을 급습하여 큰 타격을 주었으나 중과부적으로 이기지는 못하였다.임진왜란에서 의병을 일으킨 공을 기려 좌찬성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金孝騫]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진천읍 향토박물관위에 있는 도당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김효건의 전적비입니다.
김적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우천(牛川). 안찰사(按察使) 김사렴(金士廉)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철(金轍)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명(金碩鳴)이며, 아버지는 김효건(金孝騫)이다. 외조부는 이박(李璞)이며, 장인은 우희보(禹熙輔)이다. 김적(金適)[1564~?]은 1610년(광해군 2) 치러진 별시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한 뒤 이조정랑에 보직되었다. 1612년(광해군 4) 김적은 스승인 평천부원군 신잡(申磼)의 비석을 세워서 그의 충성과 공적을 현양하기 청하였다. 그 후 바른 언론을 펴다, 결국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진천으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생활을 영위하였다. 고향으로 내려온 이후 우천이라 자호(自號)하고 한거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현재 정자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재 희민사와 통하는 길은 대문을 만들어 잠겨져 있으며 대문 앞에 차량등을 세우고 울타리 옆으로 걸어서 이동할수 있다.
커다란 주차장과 함께 넒은 마당 한켠에는 관리사가 자리하고 있다.
희민사창건사적비( 希閔祠創建事蹟碑)가 세워져 있으며 충의문(忠義門)이라는 삼문이 있으며 안에는 사당인 희민사가 자리하고 있다. 근간에 세워진 유교건물로 관리가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다.
오창읍 모정리 김사렴 묘소(梧倉邑 慕亭里 金士廉墓所)
오창읍 모정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문신 김사렴의 묘소이다. 모정리 입구에 신도비와 더불어 재실인 영모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묘소는 후손들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 김사렴은 신라 경순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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