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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영월(寧越) (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 건물은 숙종25년(1699)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의 제향시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자모양으로 건립된 제전 이므로 정자각 또는 배위정이라고 한다. 장릉 아랫쪽에 건립되어 있다.
장릉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왕릉입니다. 영월 장릉(寧越莊陵)은 강원도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에 의하여 조성되었으며, 1541년과 1580년 중수되었다. 1970년 5월 1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2009년 6월 30일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영월 장릉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번지에 있다. 영월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시신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매장하면서 조성되었다. 이후 1541년(중종 36) 영월군수 박충원이 매장지를 찾아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
영월 장릉에 자리하고 있는 단종의 비각입니다. 비각 안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朝鮮國端宗大王莊陵)’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 조선 전기 영월군수 박충원을 기리는 비입니다. 박충원(朴忠元)[1507~1581]은 본관이 밀양이고 자는 중초(仲初), 호는 낙촌(駱村)이다. 1531년(중종 26) 식년시에 올라 홍문관, 승정원 등을 역임하고 1541년(중종 36) 9월 영월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영월에 3명의 군수가 연이어 죽자 민심이 흉흉하여 모두 부임하기를 꺼렸다. 박충원은 단종의 능을 찾아가 봉축하고 전물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자 고을이 조용해졌다. 박충원은 훗날 이조판서 중추부지사를 역임하고 밀원군(密原君)에 봉해졌고 사후에 문경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문집으로 『낙촌집』이 있다. 1973년 5월 후손들에 의하여 장릉에 문경공 낙촌 밀양 박충원선생 기적비(文景公駱村密陽朴忠元先生紀蹟..
게으름의 극치다. 영월 장릉을 다녀온지가 언제던가? 블로그 임시보관함에 저장 되어 있다가 이제사 블로그에 올린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왕릉.영월 장릉(寧越莊陵)은 강원도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에 의하여 조성되었으며, 1541년과 1580년 중수되었다. 1970년 5월 1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2009년 6월 30일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영월 장릉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번지에 있다. 영월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시신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매장하면서 조성되었다. 이후 1541..
우연히 길가에서 표지판을 보고 찾아든 창령사지. 개인 소유로 되여있는지 여러가지 물건이 어지럽게 흐트러진 모습이 한참이다.다녀오고 난 후 대웅전에 나한상 17기가 있다는 자료를 보고 아차 싶었다. 왜 대웅전 문을 열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만날수있는 창녕사지. 창년사지 밑으로는 개인 사유지인지 농막시설과 가축들의 사육장 채마밭등으로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오백나한상이 출토된 창녕사지는 텅진 풀밭으로 변해있었다. 옆으로는 그나마 대웅전이란 현판을 단 전각이 한채 자리하고 있었다. 창녕사지를 대하면서 그저 먹먹하다는 느낌이랄까? 창령사 오백나한상 미스터리…혹시 이곳에 단종의 얼굴이? (hankookilbo.com) 창령사 오백나한상 미스터리…혹시 이곳에 단종의 얼굴이? 어떤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