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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문경(聞慶) (4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 불상은 높이 109cm,폭 89cm로, 계립령 아래의 인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문경현조에 계립령 아래에 관음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아 관음원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주변에서 와편이 많이 찾아지고 있는 점을 보아 이 지역에 어떤 건축물이 존재했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이 사유상이 위치한 동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갈평리 5층석탑이 현존하고 있다. 이곳은 폐사지로서 관음사가 위치해 있었다고 하지만 문헌적으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 마애상은 현재 경작중인 밭의 언저리에 위치해 있으며, 작은 바위의 한 면에 양각되어 있는데, 마멸이 심한 상태이다. 머리에는 삼산관 삼면화관을 썼고, 원만한 상호에 반안후견으로 고졸한 미소가 확연하다. 오른팔은 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樂寅), 호는 운강(雲岡). 아버지는 기태(起台)이다. 대대로 벼슬을 하지 않던 집안에서 태어나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折衝將軍行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895년 8월 민비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 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하여 농암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梟首)했다. . 이어 제천의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사제(師弟)의 의를 맺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평천·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이해 4월..
이 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오층석탑으로 높이는 2.7m이다. 이중기단의 오층석탑으로 소형이면서도 매우 세련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본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2㎞ 떨어진 관음리의 관음사지(觀音寺地)에 있었는데, 1936년 당시 관음리 이장이 일본인에게 매도했던 것을 신도들이 되찾아 와서 현재의 갈평출장소 앞마당에 옮겼다고 한다. 기단의 하대저석(底石) 이하는 땅에 묻혀 있으며, 1층 기단 갑석(甲石)의 일부 모서리가 깨어져 나갔다. 상륜부(相輪部)가 많이 파손되어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 있다. 또한 5층 옥개석(屋蓋石)이 두조각으로 갈라져 있고 하대갑석도 두조각으로 크게 갈라져 있다. 기단의 각면에는 우주와 1주(柱)씩의 탱주를 배치하였다. 하대갑석에는 2단의 중석받침을 얕게 새겼으며 상대갑석..
전각안에 부처님의 상호는 마멸되어 알수가 없다. 이 또한 민초들의 마음속에 바램의 흔적일것이다. 많은 민초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약사불의 모습이다. 불두는 시멘트로 접합하여 놓았다. 돌보는 이가 있는지 주위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산이 가려져 있지만 하늘재 넘어 충주 미륵사지 미륵대불을 향하고 있는 석조약사여럐좌상(고려초기 추정)입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옆 석탑의 기단은 남아있지만 탑은 도난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차의 창문을 열고 시골길을 달린다.따스한 햇살이 봄의 내음을 전해주는것 같다.문경관음리 석불입상이란 팻말이 참 정겹다 도로 한켠으로 차를 세우고 맑은 시냇물을 건너 햇살아래 한가로운 사과밭을 지나 석불입상을 찾는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13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있다. 과숭원 한켠 얕은 언덕위에 전각안에 계신다.전각이 조금은 비좁아 보일정도로 석불은 크기가 크다.문경읍 관음리 계립령으로 가는 길목의 밭 가운데 서있는 이 석불은 높이 3.33m 의 화강석으로 제작되어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두상이 절단된 것을 시멘트로 접착시켰고 코끝도 시멘트로 보수를 했다. 안면은 마멸이 심하고 육계도 명확하지 않다. 통견의 납의가 무릎부에서 갈라졌고 군의가 처졌다.오른손은 손 바닥을 안으로하여 늘어뜨렸고 왼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