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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용암동 낙가산 보살사 극락보전에 자리하고 있는 석조지장보살좌상입니다. 1972년 용암사 경내에서 공사중 이불병립상과 함께 발견하였다고 합니다.그간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에 극락보전에 안치하였습니다. 고려시대중후반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보살입니다. 도리천(忉利天)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며,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지장보살에 관한 경전으로는 ≪지장십륜경 地藏十輪經≫과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經≫이 있다. 이들 경에 의하면 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낙가산 아래 보살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불상입니다. 석조병립상(石造竝立像)으로 특이한 조성수법을 보여 준다. 이 불상의 크기는 광배 폭 67㎝, 불상 높이 64㎝, 머리 높이 16.5㎝, 육계 높이 1.5㎝, 머리 폭 7.5㎝, 어깨 높이 46㎝, 어깨 폭 19㎝, 대좌 높이 9.5㎝, 두께 12.5㎝이다. 석조이존병립여래상은 한 광배(光背) 안에 여래입상 1구(軀)가 나란히 부조(浮彫)된 특이한 형식의 상이다. 두 여래상은 거의 같은 모습인데, 수인(手印)만 서로 반대여서 대칭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머리가 크고 키가 작달만하여 귀여운 동형불의 특징을 보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몸에도 통통한 양감이 표현되어 있다. 대의(大衣)는 통견(通肩)으로 가슴이 벌어지게 입..

1927년 7월 20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신재한(辛在漢)이며, 어머니는 김대련(金大湅)으로 2남 3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아버지가 죽자 1932년 청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와 중등과정을 마치고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에 수영특기생으로 입학 1948년 런던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늑막염의 발병으로 포기하고, 1951년에는 공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1963년 남기정(南基貞)과 혼인하여 이듬해 장녀 수정(秀晶) 출생, 1968년에는 어머니가 죽었으며, 같은 해 차녀 수진(秀眞)이 출생하였다. 1975년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로 내려가 농장을 경영하다가 1993년 9월 30일 지병인 담도암으로 사망했다. 1955년 『한국일보』에 시 ..

이 충신각은 임진왜란때 조헌(趙憲)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충신 의성인(義城人) 김선복(金善復, 1571∼1592)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지금의 충신각은 1957년에 문의면 등동리 정가울 마을 앞에 중건한 건물로서 1989년에 해체복원한 사실이 있으며, 1998년에 문의문화재단지내의 현위치로 옮겨 세웠다.건물은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는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김선복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의 충신.본관은 의성(義城)이다.임진왜란 때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1592)과 더불어 창의하여 1592년(선조 25) 8월 17일 충청도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금..

서덕길은 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을 꿇었던 자리가 녹으면서 잉어가 뛰어나와 구해드렸다. 또한, 겨울에 산신령(호랑이)의 인도로 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홍시를 구해드렸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도 약과 음식을 손수 마련하여 드렸으며 더러운 빨래도 직접 하였다. 하늘에 어머니의 쾌유를 빌면서 때때로 손가락의 피를 내어 어머니의 병환을 ..